‘다국적 캠퍼스’로 글로벌 경쟁력 키운다

  • 입력 2006년 11월 29일 02시 55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에서 최근 ‘인터내셔널 데이’를 맞아 이 학교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전통 다례 체험을 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에서 최근 ‘인터내셔널 데이’를 맞아 이 학교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전통 다례 체험을 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연세대 국제학부 학생들이 정창영 총장과 함께 교정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국제학부 재학생들 가운데 약 20%인 18명이 외국인 유학생이다. 사진 제공 연세대
연세대 국제학부 학생들이 정창영 총장과 함께 교정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국제학부 재학생들 가운데 약 20%인 18명이 외국인 유학생이다. 사진 제공 연세대
지난해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고등학교 강당. 이곳에선 연세대 언더우드국제학부의 외국인 학생 유치설명회가 한창이었다. 모인 학생은 달랑 3명. 홍보단은 당혹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준비해 간 파워포인트 자료와 학교 홍보 동영상을 보여주며 단 3명의 학생을 위해 1시간 반 동안 정성들여 학교 설명을 했다.

또 다른 명문 고등학교. 이 학교 교장은 “우리는 한국 같은 곳은 관심 없다”며 만남 자체를 거부했다. 홍보단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린 끝에 진학담당 교사를 가까스로 만나 학교 홍보 자료를 건넸다.

대전 배재대의 정순훈 총장은 이 대학이 외국인 학생 유치사업을 본격화한 2004년에만 중국을 50여 차례 직접 방문했다. 중국 26개 지역을 돌며 각 성(省)의 교육국장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한번 갈 때마다 2, 3개 시를 방문하는 빡빡한 일정을 짜고 학교 홍보와 협력 약속 받아내기에 주력했다. 이후 배재대는 학생 유치를 위해 중국 14곳, 대만 인도네시아 알제리 몽골에 각각 1곳씩 한국어 교육원을 세웠다. 이곳을 수료하고 배재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대학 입학금을 면제해 주고 외국인 학생에게는 기본적으로 학기당 5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국내 대학들이 외국인 학생 유치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기존에는 국내 학생을 외국 교환학생으로 ‘파견’하는 방식에서 국제화 방안을 찾았지만 이제는 외국인 학생을 한국 쪽으로 ‘유치’하는 쪽에서 답을 찾고 있다.

○ 명문대는 국제화, 지방대는 생존을 위해

이런 현상은 서울지역 유명대와 지방대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유명 대학들은 교육시장 개방이 본격화되면 대학의 국제적 인지도가 앞으로 학교 발전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모종린 연세대 언더우드국제학부 학장은 “외국인 학생이 안 오는 국제교육의 허브란 있을 수 없다”며 “캠퍼스 자체가 명실상부한 국제화를 이뤄야만 교육시장 개방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고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방대의 경우엔 외국인 학생 유치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지난해 전남지역 대학의 미충원율은 33.9%. 저출산 현상으로 학생의 절대 수가 줄어들면 사정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이 부족분을 외국인 학생으로 메워야 ‘텅빈 캠퍼스’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는 것이 지방대의 생각이다.

○ 귀하게 모십니다

장학금 지원, 등록금 할인, 외국인 교수 확충까지 대학들의 외국인 학생 유인책은 다양하다.

서울대와 연세대는 삼성 등 대기업들과 장학사업 협력협정을 맺고 이들 기업의 해외지사로부터 제3국 인재들을 추천받아 등록금 전액의 장학금을 지원해 우수 학생을 데려오고 있다. 이화여대는 제3국 우수학생을 선발해 졸업 때까지 전액 장학금을 주는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등록금도 깎아준다. 청주대와 성균관대는 50% 감면, 고려대는 입학금과 등록금을 35%씩 감면해 주고 월 생활비도 지급한다.

편의제공도 다양하다. 김숭진 고려대 입학전문위원은 “학제가 다른 국가의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외국인에 한해 1년에 2번 입학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성균관대와 서강대는 외국인 입학생을 위한 전용 기숙사를 세웠다. 청주대는 입학 관계자가 직접 중국에 가 진학을 원하는 학생을 인터뷰하며 학생이 한국에 오면 인천국제공항으로 마중도 나간다.

영어 강의를 위해 이화여대는 내년에만 30명의 외국인 교수를 더 임용할 예정이며, 연세대는 이미 2004년부터 한국인 교수마저도 영어강의가 가능한 사람만을 뽑고 있다.

○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국내 대학의 절박한 자구책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의 한국 대학의 인지도는 여전히 미미하다. 외국인 재학생 비율은 0.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OECD 국가의 평균은 6.4%다.

지방대의 한 관계자는 “한류 영향권의 국가라 해도 한국 대학을 아는 학부모나 학생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2004년 ‘외국인 유학생 유치확대 종합방안(Study Korea 프로젝트)’을 수립해 외국인 유학생을 2010년까지 5만 명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1983년에 유학생 10만 명 유치 계획을 세워 2003년 목표를 달성한 일본에 비해서는 한참 늦은 감이 있다.

국제적 수업 환경과 직결되는 영어강좌 비율도 2005년 현재 학부수업의 1.6%에 불과하다. 외국인 전임교수 비율도 3.2% 선에 그쳐 일본(11.1%)이나 중국(8.1%)에도 크게 못 미치는 형편이다.

○ 글로벌 교육환경은 국가경쟁력

해외에선 외국인 학생 유치를 ‘국가 비즈니스’로 인식하고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관계부처 수장과 대학 담당자들이 긴밀히 협력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싱가포르. 싱가포르 정부는 1998년부터 경제개발청 주관으로 WCU(World-Class Universities)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는 외국 대학을 적극 유치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펜실베이니아대의 와튼스쿨, 존스홉킨스대 등의 유명 과정을 들여와 공동학위제를 운영해 외국인 유학생을 끌어들이고 있다.

싱가포르 대학들도 세계 최고 수준 대학과의 경쟁을 통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교육부는 세계 명문대 수준으로 자국 대학의 경쟁력이 올라가도록 육성 정책을 만들어 지원한다. 싱가포르는 현재 6만6000여 명 수준인 외국인 학생을 2015년까지 15만 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외국인 학생 유치의 선두주자인 호주는 교육을 호주의 주요 ‘수출 상품’으로 인식하고 있다. 호주의 대학들은 대학 공동소유로 운영하는 비영리 독립기관인 ‘IDP Education Australia’를 만들어 전 세계 100여 곳에 지사를 두고 600곳 이상의 호주 교육기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호주 정부는 2025년까지 외국인 학생 규모를 현재의 3배인 56만 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이 설 기자 snow@donga.com

■“더글러스 대신 민수라 불러줘”

“예전에는 당연히 한국 학생들이 미국 이름을 지었는데 미국 유학생은 ‘더글러스’라는 미국 이름보다 ‘민수’라는 한국 이름으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해요. 연고전 응원을 같이하거나 ‘빼빼로 데이’에 선물을 주면서 한국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기를 바라는 유학생들이 많아요.”

연세대에 재학 중인 최은석(26·정치외교 4) 씨의 말이다.

급증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은 한국 학생들과 어울리기 위해 한국 이름을 짓고 동아리에 가입하는가 하면 한국 대학생들의 풍습에 따르며 캠퍼스 풍경을 바꾸고 있다.

학교마다 앞 다투어 영어 강의를 늘리고 글로벌라운지(연세대), 인터내셔널라운지(한국외국어대), E-라운지(중앙대) 등 외국인 유학생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영어전용공간을 만들면서 외국 학생과 한국 학생 간의 교류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세호(24·고려대 사회학 3) 씨는 “한문학, 한국사 과목까지 영어강의가 개설돼 어디서나 외국인 학생을 접할 수 있다”며 “팀을 짜서 공부하는 프로젝트가 많아 다들 외국인 친구 2, 3명은 알고 지내다 보니 영어회화학원에 다닐 필요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중국인 학생 800명을 유치한 청주대에는 최근 재학생들 사이에서 중국 여행 및 연수를 떠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직 대다수의 외국인 학생들이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경우가 많아 적극적이고 활발한 교류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외국인 유학생들은 무조건 외국인을 유치하려는 대학의 노력을 꼬집기도 한다. 실력을 보고 합격시키기보다 외국인 학생이면 누구나 받아들이다 보니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도 한다는 것.

연세대 대학원에 다니는 한 일본인 학생은 “입학시험은 면접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친구 중에서 대학원 시험을 봐서 떨어졌다는 말은 한 번도 못 들었다”며 “외국인 학생을 늘리는 것도 좋지만 얼마나 우수한 학생들이 오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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