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檢 수뇌부 ‘대법원장 발언 갈등’ 봉합 움직임

  • 입력 2006년 9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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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광주고검과 광주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거듭 유감을 표명한 정상명 검찰총장이 기자간담회를 하던 도중에 속이 타는 듯 물을 마시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22일 광주고검과 광주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거듭 유감을 표명한 정상명 검찰총장이 기자간담회를 하던 도중에 속이 타는 듯 물을 마시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이용훈 대법원장의 검찰 변호사 비판 발언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 변호사단체 사이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일선 검사들과 판사 변호사들은 내부통신망 등을 통해 이 대법원장의 발언을 반박하거나 옹호하고 나서는 등 일선의 갈등 기류는 확산되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22일 “검찰로서는 확전을 바라지 않는다. 이만하면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날 대법원이 검찰에 대해 “검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 대법원은 정상명 검찰총장이 ‘유감 표명’ 정도로 대응한 데 대해 비공식적으로 대검 측에 “고맙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일선 검사들은 부글부글=검찰 내부 통신망에는 이날도 이 대법원장의 말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일선 검사들의 글이 10여 건 올라왔다.

진주지청 허치림(사법시험 43회) 검사는 “범죄자들 때문에 피해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사회를 원망하면서 자살까지 결심하는지 사람들은 모른다”며 “이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국민의 인권을 고민한다면 가해자의 인권에 앞서 피해자의 고통을 달래고 위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용석 대전고검 차장은 “수사 기록은 아무렇게나 던져도 되는 쓰레기 같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일부 변호사 ‘탄핵’ 주장=변호사들은 이 대법원장이 변호사들을 사기꾼으로 몰고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는 이유를 들어 계속 반발하고 있다. 일부 변호사는 이 대법원장이 헌법에 규정돼 있는 변호사의 존재를 무시한 것은 헌법 위반으로 탄핵 대상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상당수 변호사는 이 대법원장이 변호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형사고소하고 손해배상 소송을 내야 한다고 대한변호사협회 집행부에 요구하고 있다. 일부 변호사는 “변협이 법적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개별적으로 대응하겠다”며 변협 집행부를 압박하고 있다.

하창우 변협 공보이사는 “변호사들의 요구 수위가 상당히 높아 대법원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집행부 처지에서는 다소 곤혹스럽다”며 “25일 상임이사회에서 후속조치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협 관계자는 “젊은 변호사들은 이 대법원장 자신이 변호사 시절 수임료로 거액을 벌었으면서 대법원장이 되고 나서는 변호사들을 무시한다며 흥분하고 있다. 변호사 출신 대법원장에 대한 기대가 깨진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법원장 옹호 움직임=대법원은 이날 어떤 반응이나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판사는 내부 통신망에 이 대법원장을 옹호하는 글을 올렸다.

법원공무원 노조도 변협에 대한 항의서한을 통해 “대법원장 사퇴 운운 주장은 사법개혁을 방해하는 움직임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재야법조계에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성명서를 내고 “부적절한 표현을 꼬투리 잡아 전체 발언의 취지를 왜곡하는 행동은 자제하고 법조계가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이 대법원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내부 통신망에선…▼

일선 판사들과 검사들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을 놓고 뜨거운 공방을 벌이고 있다. 22일 법원과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오른 대표적인 글을 소개한다.

“검찰의 영장이 위협수단으로 쓰이는일 많아”

- 고양지원 정진경 부장판사

대법원장 발언의 근본적인 취지는 잘못된 법원의 관행을 적절히 지적한 것이다. 이번 논쟁을 과거의 타성을 깨고 법의 취지에 맞는 재판 관행을 정립해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조서 재판’의 문제점은 판사들도 대부분 공감하고 있고, 검찰이 공판중심주의에 호응해 공판검사를 증원하고 있다고 하지만 주된 관심은 여전히 수사에 있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갖고 있는 한 수사 분야에 인력을 빼앗겨 전문적 기소기관이 되기 어렵다.

피의자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 구속영장 청구를 위협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는 손쉽게 영장을 발부해 준 법원의 관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관행은 검찰을 더욱 권력기관화해 무죄 판결이나 영장 기각과 관련해 불만이 있으면 헌법기관인 법관 개인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항의하고 뒷조사를 하는 등 압력을 가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검찰의 불법적 행동 사례를 수집하고 대응을 강구해야 한다.

변협이 인권과 관련해 일정한 역할을 한 점을 인정하지만 현재 모습은 지나치게 직역이기주의에 기울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감출 수 없다.

“법관들의 자유로운 판단 막는 위헌적 발언”

- 수원지검 윤대해 검사

이 대법원장이 “검사들이 밀실에서 받은 조서가 어떻게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느냐. 검사가 조사한 수사기록을 던져 버려라”고 발언한 것은 헌법에 규정된 ‘법관의 독립’과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자유심증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형사소송법 308조는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법원장은 증거의 증명력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법관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는 헌법정신에 어긋난다.

현재 법관들은 무조건 검찰조서를 믿지도, 무조건 법정 진술을 믿지도 않는다. 다른 모든 증거와 정황, 상식과 논리를 동원해 어떤 증거가 더 신빙성이 있느냐를 판단한다.

그런데 대법원장은 판사들이 심증을 형성하는 데 ‘자유’를 주지 않고 검찰 진술을 믿지 말라고 한 것이다.

검찰 진술과 법정 진술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신빙성이 있느냐는 재판을 맡은 판사가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판단하면 되고 이는 헌법의 요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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