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이라도 옆에 재웠으면”

  • 입력 2006년 6월 9일 03시 04분


“만날 수 있다니…”북한이 6·15공동선언 6주년 기념 이산가족 특별 상봉 행사에서 납북 고교생 김영남 씨 모자 상봉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김 씨의 모친 최계월 씨(왼쪽)가 8일 서울 송파구 수협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울먹이고 있다. 오른쪽은 김 씨의 누나인 영자 씨. 홍진환 기자
“만날 수 있다니…”
북한이 6·15공동선언 6주년 기념 이산가족 특별 상봉 행사에서 납북 고교생 김영남 씨 모자 상봉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김 씨의 모친 최계월 씨(왼쪽)가 8일 서울 송파구 수협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울먹이고 있다. 오른쪽은 김 씨의 누나인 영자 씨. 홍진환 기자
“아들이 좋아하는 계란을 몇 판이라도 사 갈 테니 빨리 만날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납북자 김영남 씨의 어머니 최계월(82) 씨는 28년 전 납치된 뒤 한순간도 잊지 못한 늦둥이 막내아들 영남이를 볼 수 있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 듯했다.

8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수협중앙회 2층 회의실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최 씨는 “영남이를 하룻밤이라도 옆에 재우며 마음껏 안고 쓰다듬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씨의 누나 김영자(48) 씨는 “이렇게 빨리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면서 “상봉일을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통일부에서 6월 말쯤이란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납북자 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도 “북한이 처음으로 김영남 씨의 실체를 인정해 납북자 문제의 역사적인 획을 긋는 사건으로 생각한다”며 “납북자 가족 대표로서 기쁨을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현재 추진 중인 납북자 관련 특별법 제정을 약속대로 이행해야 하며 북한도 납치사실을 인정하고 가족에게 사죄하고 돌려보내야 한다”며 “김 씨 가족 상봉을 계기로 납북자 문제가 점진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8년 8월 16세였던 김영남 씨는 전북 군산시 선유도해수욕장에 친구들과 놀러 갔다 실종됐다. 당시 그는 군산기계공고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김씨는 북한에서 김정일정치군사대를 졸업한 뒤 대남공작기관인 북한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일본어를 배우며 알게 된 일본인 납치피해자 요코타 메구미와 1986년 8월 결혼해 이듬해 딸 혜경 씨를 낳은 것으로 전해졌다. 메구미가 출산 후 심각한 우울증을 앓자 부부는 1993년 가을부터 별거에 들어갔고 메구미는 이듬해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1977, 78년 홍도 등지에서 납치된 고교생 최승민, 이민교, 홍건표 씨 가족은 김 씨 가족의 상봉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뒤 김 씨 가족과 식사를 하며 납북 고교생 송환을 위한 대책 등을 의논했다.

최 씨의 아버지 최준화(77) 씨는 “아들을 잃은 뒤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지만 아들의 생사조차 알 수 없어 답답하다”며 안타까워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체제 선전-납북자문제 희석 노린듯

북한이 8일 김영남 씨 모자의 상봉을 전격 허용하자 정부 고위 당국자는 “솔직히 이렇게 빨리 응해 올지 몰랐다”며 의외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 정부와의 요코타 메구미(橫田惠) 유골 송환 협상에서도 북한 정부는 김 씨가 대남특수기관에 근무한다면서 유전자 정보는 물론 사진 제공도 하지 않는 등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

북한이 수백 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하고 남측의 보도진이 이를 취재하는 공개된 장소에 김 씨를 내보내기로 결정한 배경은 무엇일까.

▽북한의 일석이조(一石二鳥) 카드=전문가들은 그 대답을 납북자 상봉의 전례에서 찾는다.

2001년 2월 남측 가족과 상봉한 대한항공 여승무원 출신 성경희(1969년 12월 납북) 씨를 포함해 지금까지 상봉장에 나타난 국군포로와 납북자 14명이 남측 가족에게 남긴 말은 이구동성으로 “공화국에서 장군님 덕분에 이밥(쌀밥)과 고기 먹고 잘살고 있다”는 얘기였다.

북한 당국은 납북자 상봉을 체제 선전에도 활용하고 납북자 문제도 잠재우는 일석이조 카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

북한 정부에 부담이 되고 있는 메구미 유골 조작 의혹도 이번 기회에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북한은 김 씨의 입을 통해 ‘북한은 성의를 보였다. 억지주장을 하는 것은 일본’이라는 논리를 펼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에 명분을 주면서 경제적 보상 등 실리를 챙기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고려대 북한학과 남성욱 교수는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에 전력을 기울이는 남측 정부에 일종의 선물을 주는 모습을 보이면서 거꾸로 남측에 대해 성의를 보이라는 식의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공식 브리핑을 통해 즉각 “분단의 아픔을 해소하고 미래지향적인 자세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하고 환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도 김 씨 모자의 상봉을 100%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북한은 8일 보낸 전화통지문에서 “남측 내부에서 김영남과 그의 어머니의 상봉을 앞두고 그에 난관을 조성하는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당국이 책임적인 조치를 취해 달라”고 촉구했다.

열차 시험운행을 돌연 취소했던 전례에 비춰 볼 때 북측이 갑자기 상봉을 취소해 버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주고받기 식의 대가는 없어”=정부는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일부 납북자와 국군포로를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생사를 확인하고 상봉을 성사시켜 왔다. 이 같은 방식을 통해 2000년 11월 제2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부터 올 3월 제13차 상봉행사까지 12차례에 걸쳐 14가족 63명의 납북자 또는 국군포로와 남측 가족이 만날 수 있었다.

19일부터 금강산에서 시작되는 6·15공동선언 6주년 기념 이산가족 특별 상봉행사에서 김 씨 모자가 상봉하는 것도 같은 방식. 하지만 정부는 김 씨 가족의 상봉에 특별한 공을 들였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4월 제18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김 씨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했다. 이와 함께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생사 확인과 상봉, 송환이 이뤄질 경우 반대급부로 ‘대규모 경제지원’을 하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이번에 김 씨 모자의 상봉이 이뤄지게 된 데에 주고받기식의 대가는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북한에 속지 말아야”

국제적인 압력을 통한 납치 문제 해결을 강조해 온 일본정부와 납북자 관련 단체는 북한 측의 최계월-김영남 씨 모자 상봉 추진에 대해 곤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유전자 검사를 통해 어렵게 조성된 한일 간 공조 분위기가 깨져 대북(對北) 압박효과가 떨어질 가능성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납북자가족연락회와 ‘납북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는 8일 오후 긴급성명을 내고 “한국정부는 북한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고 모든 한국인 납북자를 구출하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북한의 감시 아래 가족이 만나는 것보다는 전직 공작원들의 증언을 통해 불거져 나온 고교생 납치 사실을 북한이 인정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1977년 북한에 납치된 뒤 김 씨와 결혼한 메구미의 부모 요코타 시게루(橫田滋·73), 요코타 사키에(橫田早紀江·70) 씨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요코타 씨 부부는 “자식을 만나고 싶은 최 씨의 심정은 잘 알고 있다”면서도 동행 방북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들 부부는 최 씨가 지난달 일본을 방문했을 때도 ‘메구미가 이미 사망했다’는 북한의 주장이 기정사실화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방북을 만류한 바 있다. 일본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김 씨 모자가 재회하면 북한에 메구미 문제를 추궁할 동력(動力)이 떨어진다”, “납치 문제를 정치 문제가 아닌 인권 문제로 접근하라는 여론이 높아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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