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音大 가짜 석-박사,러시아語 깜깜…자기학위증도 못읽어

  • 입력 2006년 3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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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와 가짜러시아 S음대의 진짜 박사 학위증(위)과 이번에 적발된 가짜 박사 학위증. 이 가짜 학위증은 국내 명문대 음대 교수가 한국학술진흥재단에 자신의 박사 학위증이라고 등록한 것이다.
진짜와 가짜
러시아 S음대의 진짜 박사 학위증(위)과 이번에 적발된 가짜 박사 학위증. 이 가짜 학위증은 국내 명문대 음대 교수가 한국학술진흥재단에 자신의 박사 학위증이라고 등록한 것이다.
국내 사설 음악학원 대표에게 돈을 주고 가짜 러시아 음악대 석박사 학위를 산 대학교수, 시간강사, 교향악단 단원 등 120여 명이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이영렬·李永烈)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소재 음대 총장 Z 씨 등과 짠 뒤 교수와 국내 음대 졸업생 등 120여 명에게서 모두 25억 원을 받고 가짜 석박사 학위를 발급해 준 혐의(업무방해 등)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서울로얄음악원 대표 도연단(51·여) 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19일 밝혔다.

검찰은 도 씨를 통해 산 가짜 박사학위를 이용해 대학 교수로 임용된 서울 J대 음대 조교수 박모(50) 씨 등 5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가짜 박사학위를 한국학술진흥재단에 등록한 E대 음대 교수 주모(61) 씨 등 16명을 벌금 700만∼1000만 원에 약식 기소했다.

▽러시아어로 적힌 자신의 학위증 내용도 못 읽어=도 씨는 상당수 국내 음대 교수가 박사학위가 없어 대학원생 강의에 큰 부담을 갖고 있다는 약점을 이용해 교수 등을 수강생으로 모집했다.

학위 과정은 아주 간단했다. 서울로얄음악원에서 러시아 음대 교수들에게서 받는 몇 시간의 강의와 레슨, 러시아 음대를 10여 일 방문하는 일정이 전부였다. 그 대신 가짜 학위 수여 대가로 석사과정(4학기)의 경우 대략 1600만 원(학기당 400만 원), 박사과정(4∼6학기)은 2000만∼3000만 원(학기당 500만 원)을 등록금으로 받았다.

도 씨는 서울로얄음악원이 러시아 음대의 분교인 것처럼 꾸미기 위해 Z 씨가 같은 대학의 교수 1, 2명과 함께 한국을 연간 10일가량 방문해 음악원에서 강의하도록 했다. Z 씨는 그 대가로 도 씨가 받은 등록금 25억 원의 절반을 챙겼다.

학위 과정 자체가 워낙 엉터리여서 가짜 학위를 산 사람 대부분은 도 씨가 개설한 학위 과정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검찰은 전했다.

논문 심사도 엉터리였다. 가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통역을 통해서 논문을 발표하는 수준이었다. 박사학위 논문 가운데는 학사 논문 분량에도 못 미치는 10∼20쪽짜리도 있었다.

학위 수여도 마찬가지. 도 씨 등은 서울 시내 호텔을 빌려 석박사 가운을 걸치고 학위 수여식을 했다. 가짜 학위는 러시아 음대의 총장이 러시아에서 용지를 가져와 서울로얄음악원에서 서명한 뒤 곧바로 수여되기도 했다.

가짜 박사학위 취득자 전원은 학위증에 러시아어로 써 있는 내용을 전혀 읽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했다.

가짜 러시아 음대 박사 21명은 돈을 주고 산 가짜 학위증을 외국 박사학위의 신고 접수를 수행하는 한국학술진흥재단에 버젓이 등록해 박사 행세를 했다.

가짜 박사학위 구매자를 직업별로 보면 조교수 이상 대학교수가 10명, 전임강사 1명, 시간강사 9명, 교향악단 단원 1명 등이다. 이 가운데 2명은 해당 전공 분야의 지식이 전혀 없으면서도 가짜 박사학위를 제출해 조교수와 전임강사에 임용됐다.

▽부실한 외국 학위 검증 시스템도 문제=외국 박사학위 신고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이 단순히 신고를 받고 통계를 낼 뿐 학위를 확인하지는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이름 있는 외국 대학의 학위는 어느 정도 진위를 판단할 수 있지만 비영어권 국가의 ‘××아카데미’와 같은 기관에서 발급하는 학위는 진위를 가리기 힘들다.

부패방지위원회(현 국가청렴위원회)는 2003년 외국 가짜 박사학위 문제와 관련해 교육 당국에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검찰, 가짜 러시아 석사 학위자 계속 수사=검찰은 Z 씨를 지명수배하고 국내에 입국할 때 관계기관에 통보되도록 조치했으며 러시아 법무부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가짜 박사학위 취득자 21명에 대해 징계 절차를 밟도록 교육인적자원부에 명단을 통보하기로 했다.

검찰은 도 씨의 학원에서 러시아 하바롭스크 소재 음대의 가짜 석사학위를 받은 100여 명에 대해서도 추가로 조사해 형사 처벌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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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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