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논술]‘붕어빵 주장’ 피하고 자기의 생각을 써라

  • 입력 2006년 2월 28일 03시 08분


코멘트
서울대는 논술에서 교과서를 기초로 학생들에게 친숙하지만 다각도의 깊이 있는 사고를 요구하는 문제를 출제하고 있다. ‘경쟁의 공정성과 경쟁 결과의 정당성’이라는 2006학년도 정시모집 논술 주제 역시 대다수의 학생에게 그리 낯설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공유지의 비극, 시장 경제와 국가의 개입, 국제 경쟁과 신자유주의, 공동체, 사회복지, 생태 등 이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영역을 사회 교과를 비롯해 여러 교과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2006학년도 서울대 정시모집의 논술 문항은 능력에 차이가 있는 경쟁자 사이에서 발견되는 경쟁 양상에 대한 세 가지 사례와, 경쟁과 자유에 관해 다양한 입장을 보여 주는 일곱 개의 제시문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①세 가지 사례는 경쟁 상황을 어떻게 유형화하는가 ②제시문에 나타난 자유와 경쟁의 의미, 자유와 경쟁의 제한이 정당화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염두에 두고 논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한 뒤, 자신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논증해야 한다.

채점의 주안점은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사고력이다. 주장 자체의 옳고 그름이나, 참고자료로 제시된 여러 원전을 사전에 읽었는지 여부는 채점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답안을 채점한 결과, 무시할 만한 차이지만 시군 지역 학생들의 점수가 서울이나 광역시 학생보다 높았다. 이는 사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이나 대도시 학생들이 지방 학생보다 논술 점수가 높을 것이라는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결과였다.

지역 차이가 없다는 점이 긍정적인 측면이라면, 부정적인 측면은 논술고사의 답안이 획일적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답안은 ‘경쟁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그 과정이 공정해야 결과의 정당성을 갖는다’라는 기계적인 ‘정답’을 찾아내면서 끝을 맺는다.

서울대가 이런 정답을 유도하기 위해 수험생에게 2500자나 쓰라고 요구했을까. 학생들의 정답은 마치 ‘범죄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법을 준수하며 착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답하는 것과 비슷하다.

‘경쟁의 공정성과 경쟁 결과의 정당성’이란 논제에는 학생들이 찾아낸 정답이 이미 함축돼 있다. 결국 논제의 핵심은 이 정답이 과연 정당한지 성찰하는 것, 다시 말해 이 정답을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와 조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현실에서는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등 파생될 수 있는 질문에 대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것이다.

많은 답안이 ‘현대 사회는 무한경쟁 사회’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거의 같은 결론으로 끝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수험생이 논술시험을 대비하는 방식이 획일적인 답안을 만들어 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서너 주 동안 집중적인 논술 사교육을 받는다.

학원에서는 기출 문제를 중심으로 고전 요약본이나 주요 개념 혹은 문구에 대한 강의를 통해 배경 지식을 급조한 뒤 주어진 주제에 대해 글을 쓰게 하고 첨삭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첨삭은 학생의 자유로운 사고를 존중하면서 이뤄져야 하지만 실제로는 첨삭 과정을 거치면서 자유로운 사고는 제한되고 개성적인 답안은 미리 만들어진 모범답안으로 수렴된다.

이렇게 자유로운 사고와 창의력을 일정한 유형으로 획일화하고 수십 개의 모범답안을 암기하는 주입식 교육을 받다 보면, 논술은 어느새 암기 시험이 되고 만다. 그 결과 최하위 점수를 간신히 벗어난 점수를 받는다.

대학이 논술을 보는 이유는 단순히 학생을 변별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과 지식의 단순 반복학습과 암기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스스로 탐구하는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과 독서·토론을 통한 사고력을 배양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2008학년도 논술에서도 각 교과의 내용을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요구하는 문제를 여러 형태로 출제할 것이다. 따라서 고교 전 과정의 교과서가 논술 준비의 가장 기본적인 교재이다. 그러나 교과서의 내용을 단순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교과서가 다루는 주제와 관련된 독서가 병행돼야 다양한 시각과 깊이 있는 사고력을 배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교 윤리 교과서에서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혹은 악한가에 대해 가르친다. 교과서에서 배운 하나의 주제를 출발점으로 꼬리를 문 질문을 함으로써 사고의 폭과 깊이를 키워 갈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주장에 대해 비판해 볼 수도 있고, 본성과 행위는 무엇 때문에 괴리될 수 있는지, 인간이 모인 사회와 동물의 세계에서는 선악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선악의 판단 기준은 절대적인지, 분쟁은 어떻게 해결하고 그 모순은 무엇인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버스나 지하철에서 왜 경로석이 필요한지 등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현상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여러 방향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 보는 것도 사고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고력은 타인이 키워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키워 가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책을 읽고 생각하고 쓰고 토론하는 과정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교사는 그 과정이 더 다각적이고 심층적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공교육에서 논술을 준비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공교육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교육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논술교육이 3년간 학생을 지도하는 고교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면 현재의 상황은 결코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논술에서 평가하는 창의적 사고력의 중요성은 대학에 들어올 때보다 대학 생활과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훨씬 커진다. 새로운 생각은 자유를 전제로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논술의 기본은 자유로운 생각이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아니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묻고 싶어 한다.

이종섭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