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혹한 녹인 ‘할머니의 손’ 평생모은 5억 기탁

  • 입력 2005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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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 좋은 일을 한번 해 보려는 것뿐이지요. 구태여 알릴 필요는 없었는데….”

9일 오후 5시경 부산 사하구 하단동 동아대 승학캠퍼스 최재룡(崔在龍) 총장실에 남루한 차림의 80대 할머니와 스님 한 분이 찾아 왔다.

이 할머니는 최 총장을 만나자마자 손을 잡으며 “이 사회와 젊은 사람들을 위해 보람 있는 일에 써 달라”며 5억 원짜리 수표 한 장을 내 놓았다.

“80평생 이웃을 위해 베풀 수 있는 삶을 살겠다는 각오를 잊은 적이 없지요. 바깥에는 이런 사실을 알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최 총장이 차 한 잔을 권하기도 전에 할머니는 훈훈한 마음을 남겨둔 채 떠났다.

동아대도 13일에야 이 할머니의 기부 사실만 밝히고 거액을 내 놓은 배경과 신상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라는 이 할머니는 자신이 다니는 사찰 관계자에게 “부산에 있는 한 대학에 내가 푼푼이 모은 돈을 내 놓아 좋은 일에 쓰도록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동아대를 소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할머니는 20대 초반에 부산으로 시집 와 떡장수 콩나물장수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다.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면서 살림이 불어가는 재미도 맛보았다.

고단한 삶이었지만 언젠가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뭔가 베풀겠다는 다짐을 다지고 또 다졌다고 한다.

여태껏 감기 한 번 걸릴 여유가 없을 정도로 앞만 보고 살아 온 할머니는 최근 몸살 증세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옆에 있던 환자 한 명이 한마디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을 봤다.

그는 ‘이러다 평소 하고 싶었던 일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세상을 뜨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할머니는 퇴원하자마자 애지중지 간직하고 있던 5억 원을 뜻있게 써 달라며 동아대에 기탁했다.

최 총장은 “할머니의 소중한 뜻을 받들어 기부금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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