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 베이비부머, 그들이 떠난다]<上>너무 빨리 온 ‘퇴장’

  • 입력 2005년 11월 1일 03시 01분


코멘트
《한국의 ‘베이비 부머’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만 해도 이들의 경제적 미래는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했다. 고성장을 하던 기업들은 봉급을 늘려 줬고 인사 적체도 없었다. 늘어난 소득으로 베이비 붐 세대는 왕성한 소비력을 보이며 내수를 이끌어 왔다. 이미 일부 퇴장이 시작된 이들 세대가 본격적으로 떠나면 한국 사회는 소비 위축과 노동력 부족을 한꺼번에 겪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 베이비 부머 퇴장, 경제에 큰 파장

고도 성장기이던 1980년대에 이들 세대의 임금은 급등했다.

대기업 A사 김모(50) 상무의 1981년 초임 연봉은 480만 원 정도. 지금은 1억2000만 원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은 ‘명목소득’으로 25배.


1981년 월평균 28만953원이던 도시근로자 가구 소득은 1991년 115만8608원으로 4배로 증가했다. 다시 10년 뒤인 2001년에는 262만5118원으로 뛰었다.

자산소득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기업 B전자업체의 정모(48) 부장은 1984년 결혼하면서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1800만 원짜리 집을 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집값은 갑절로 올랐고 이후 서울 강남지역으로 옮겨 네 번 이사를 다니며 아파트 평수는 46평으로 커졌고 집값은 9억 원대로 올랐다.

정 부장은 현재 고교 3학년 딸과 중학교 2학년 아들 사(私)교육비로만 매달 200만 원 이상을 쓴다. 매년 평균 500만 원 정도를 들여 가족 해외여행을 한다.

베이비 부머들은 이처럼 늘어난 소득으로 소비지출을 늘리며 한국의 내수를 떠받쳐 왔다.

하지만 이들의 노후가 편안하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박덕배(朴德培) 연구위원은 “이들은 자산을 주로 부동산이나 예·적금으로 갖고 있어 저금리에 부동산 값이 안정되면 은퇴 후 소득이 급격히 줄 수 있다”며 “이들이 모두 은퇴하면 한국의 전체 소비가 위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숙련된 노동력 누가 메우나

베이비 붐 세대가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인구 비중(16.8%)보다 훨씬 크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에 걸쳐 취업한 이들이 아직 기업에 남아 있다면 차장, 부장, 임원급들이다. 생산직도 고참 조장이나 반장급, 기사 등으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전체 임직원 5만3000명 중 베이비 붐 세대는 1만9000명으로 35.8%나 된다. 포스코도 전체 1만8888명 중 37.3%(7037명), 두산중공업은 4798명 중 41%(1971명)가 베이비 부머다.

이들이 떠나기 시작하면 한국 기업들은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특히 숙련 근로자 부족 현상이 우려된다.

통계청은 2016년을 정점으로 15∼64세의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에 이후 중(中)고령층이 경제활동에 적극 참가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두산중공업 인사팀 관계자는 “향후 꾸준히 줄어들 고참 근로자들의 숙련기술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이 기업들의 과제”라고 말했다.

일본은 ‘단카이(團塊) 세대’의 무더기 은퇴를 막기 위해 1998년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늘렸고, 2006년부터 단계적으로 더 늘려 65세까지 늦출 예정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金廷翰) 연구위원은 “노동력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 기업들도 머잖아 ‘임금 피크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 ‘낀 세대’ 베이비 부머

‘과밀과 경쟁’의 세대.

베이비붐 세대의 범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출산율을 근거로 1955∼1963년 출생한 인구집단을 베이비 붐 세대로 부르는 학자가 많다지만 가족계획이 1962년 시작된 점을 들어 1955∼1961년 출생자로 보는 의견도 있다.

이들은 시대적으로 ‘산업화 세대’의 권위에 눌리고 ‘386세대’와 ‘인터넷 세대’의 기세에 밀린 ‘낀 세대’다. 절대빈곤에서 해방되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기 시작한 첫 세대이기도 하다.

○ 권위주의에 좌절하고 환란에 쓰러지고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등장한 박정희(朴正熙) 정권 때 대부분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역사적 경험은 유신독재.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반공’ ‘멸공’ 등 냉전 이데올로기와 ‘한국식 민주주의(유신)’ 교육을 받았다.

이화여대 함인희(咸仁姬·사회학) 교수는 “청년기에 긴급조치, 대중가요 방송 금지 등을 경험하면서 권력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1979년 10·26사태에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 전두환(全斗煥) 정권에 이르기까지의 민주화 실패는 이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줬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이 될 무렵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도 또다시 군부정권의 통치를 겪어야 했기 때문.

40대로 접어드는 늦은 나이에 닥쳐온 정보화 혁명도 이들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가 시대의 가치관을 주도했던 데 반해 한국에서는 “노력만큼 빛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함 교수는 “생애 주기상 자녀교육비 부담이 가장 큰 데 비해 저축은 가장 적었던 이 세대야말로 외환위기 최대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 ‘콩나물 교실’에서 생존 법칙 체득

베이비 붐 세대들은 학창시절을 ‘콩나물 교실’에서 보냈다. 이들이 초등학생이던 1965∼1968년 초등학교의 학급당 인원은 65명으로 1960년(57.4명), 1978년(53명)에 비해 매우 많았다.

경쟁이 심하다 보니 같은 세대 안에서 실력 차가 크게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존 본능을 체득했다.

재수생 누적과 고액 과외가 부각된 것도 이 시기였다. 이런 경험 때문에 이 세대는 자녀 교육비를 다른 세대보다 많이 지출한다.

이들은 경제개발에는 동의하지만 반(反)인권적 독재에는 반대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진보와 보수가 혼재된 집단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일생 동안 심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굳이 가른다면 일정 부분 보수적 성향을 띤다는 것.

고려대 조대엽(趙大燁·사회학) 교수는 “이 세대는 일부가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지만 대부분 정치적으로 소극적인 경향을 보였으며 현실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