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 베이비부머, 그들이 떠난다

  • 입력 2005년 11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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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입사 이후 은퇴 같은 건 걱정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외환위기 후 동기 중 3분의 2가 회사를 떠났지요. 앞으로 3년을 버틸 수 있을까요.” 대기업 A사의 김모(50) 상무는 한국 ‘베이비붐(Baby-boom) 세대’의 맏형 격이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1955∼1963년에 태어난 사람들. 그는 재수를 한 뒤 1975년 대학에 입학했지만 ‘10월 유신’의 여파로 1년의 절반은 휴강이었다. 그래도 군대 제대 후 1982년 여유 있게 대기업에 취직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동기 120명 중 1명만 오른다는 임원 자리를 따냈지만 퇴직 이후에 대한 불안감은 여느 동년배와 다름이 없다.》

198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현장을 지켜 온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앞으로 3∼11년에 걸쳐 사회 전면에서 퇴장한다.

816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6.8%를 차지하는 이 세대가 모두 물러나면 한국 사회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현재 나이 42∼50세인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바람 속에서 이미 상당수가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남아 있는 베이비붐 세대들도 평균 53세경에는 은퇴할 전망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태어나 경제적 풍요를 누린 미국 ‘베이비 부머’(1946∼1964년 출생)나 일본 ‘단카이(團塊) 세대’(1947∼1949년 출생)와는 달리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들은 ‘준비 안 된 퇴장’을 해야 한다.

신현암(申鉉岩)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 세대는 사회 제도나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면서 “변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열매’를 얻진 못한 세대”라고 규정했다.

한창 일할 나이인 30, 40대 초반에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것도 이들의 비극이었다. ‘정보화’ ‘세계화’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해 뒤따라온 세대에 등을 떠밀리면서 재기의 기회도 얻지 못했다.

부모를 오래 부양하고도 정작 자신들은 자녀들에게 노후를 기댈 수 없는 ‘낀 세대’이기 때문에 노후 생활의 불안정성이 높다.

하지만 비관적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대는 교육 수준이 높고 건강 상태가 좋다. 한국의 산업 구조도 고령층에 유리한 서비스업 중심으로 옮겨 가고 있어 이들의 퇴장이 미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대 인구학연구실 조영태(曺永台) 교수는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현재의 노년층보다 정치적 영향력과 발언권이 클 것이며 기업과 사회의 요구로 정년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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