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통화도중 거명된 사람도 마구잡이로 도청”

  • 입력 2005년 10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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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옛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3개월간의 수사를 통해 안기부와 국정원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도청 실태가 속속 드러나면서 사법처리 범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제3자도 무차별 도청”=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국정원이 국내 주요 현안에 대해 특정인의 전화통화를 도청한 뒤 통화에 등장하는 제3의 인물에 대해서까지 도청을 했다는 단서를 잡고 수사 중이다.

검찰은 김은성(金銀星·구속)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 재직 시절 감청 담당 부서에 근무했던 전현직 직원들에게서 “(김 전 차장 등이) 감청을 통해 작성한 통신첩보 보고서를 받아 본 뒤 첩보에 등장하는 제3의 인물에 대해서도 (불법)감청을 하도록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는 국정원의 도청이 당초 (불법)감청 대상자와 통화 상대방은 물론 이들 사이의 대화에 등장하는 제3의 인물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YS 시절은 진상 규명 차원”=당초 이번 사건을 촉발시켰던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 안기부 비밀도청 조직 ‘미림팀’에 의한 도청은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전 미림팀장 공운영(孔運泳·구속기소) 씨 집에서 압수한 도청 테이프 274개의 내용도 공 씨의 진술 등을 토대로 분석 작업을 대부분 마친 상태.

8월 초 국정원에서 자체 조사 결과 등을 넘겨받은 검찰은 국정원 압수수색과 미림팀 전현직 직원 조사를 통해 안기부 시절 도청 실태 파악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도청은 주로 미림팀에 의한 ‘출장 도청’에 의해 이뤄졌음을 확인했다.

이후 검찰 수사는 공 씨에 의해 유출됐던 도청 테이프를 국정원이 회수하는 과정에서의 ‘뒷거래’ 의혹과 추가 유출 여부를 확인하는 데 초점이 모아졌다.

그러나 안기부 시절 도청은 대부분 공소시효가 지나 사법처리 대상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안기부 시절 도청은 진상 규명 차원에서 수사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DJ 정권 인사들 사법처리 불가피”=사법처리는 공소시효가 남은 DJ 정부 시절 인사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검찰은 국정원 감청담당 부서인 8국(과학보안국)이 김 전 차장의 주도하에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도청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김 전 차장과 8국 전현직 직원들에게서 당시 도청 정보가 원장뿐 아니라 청와대와 정권 실세 등에게도 보고됐다는 진술도 확보한 상태다.

이 같은 진술을 토대로 검찰은 이번 주말경 김 전 차장 재직 시절 국정원장이었던 임동원(林東源), 신건(辛建) 씨를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은 이들의 도청 개입 단서를 이미 상당수 확보했으며, 오히려 이들에겐 정권 실세에 대한 도청 정보 유출 여부를 확인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사법처리 어디까지=사법처리는 주로 도청의 최종 책임자들에게 한정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미 구속한 김 전 차장을 26일경 기소할 방침이다.

김 전 차장 외에 DJ 정부 시절 국정원장 4명 중 2, 3명과 8국장 1, 2명 등이 사법처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임동원, 신건 씨는 사법처리가 불가피해 보이지만 수위는 다소 유동적이다.

윗선의 지시를 받고 도청에 참여한 국정원 실무자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선처를 할 것으로 보인다.

DJ 정권 실세들은 도청 정보를 보고 받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처벌이 어렵다는 게 검찰 안팎의 분석이다.

검찰 관계자는 “통신비밀보호법상 보고 받은 도청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얘기했거나 공개한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한데 이에 대한 확인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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