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 내 교실 창틀에 턱을 고이고 아이들이 노는 모양을 바라보는데, 벌이 한 마리 날아와 내 머리에 붙었다가 날아간다. 벌이 날아가는 허공을 바라보니, 새도 날아간다. 박새, 딱새, 때까치, 까치도 날아다닌다. 새뿐이 아니다. 생김새가 다 다른 벌들도 수없이 날아다닌다. 벌들뿐 아니라, 깔따구, 하루살이 같은 날것들과 나비들도 날아다닌다.
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나간다. 햇살이 따사롭다. 등이 따뜻해져 온다. 벌써 따사로운 것이 더 좋다. 앞 강물에 오리들이 날아 왔는지 꽥꽥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보면 잔디 속에도 온갖 풀들이 섞여 자란다. 풀들뿐 아니다. 풀밭에는 아이들의 발길을 피해 귀뚜라미, 거미, 개미, 땅강아지들이 기어 다닌다.
학교 뒤꼍을 보니, 밤송이들이 다 떨어졌다. 몇 개 달린 밤송이도 빈 밤송이다. 학교 울 밖 밭에는 콩잎들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콩밭에는 수수 모가지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고구마 줄기도 이제 시들어간다.
산 아래 억새들은 지는 햇살에 빛나고 쑥부쟁이 꽃들은 피어 퇴색해 가는 가을 풀들 속에 함초롬하다. 아! 다 산 것들은 가을 속으로 가고, 더 살 것들은 겨울을 준비한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 사는 것만 부산한 게 아니고 이 세상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 다 이 가을 부산하기만 하다.
이랬을 것이다. ‘야생초 편지’를 쓴 황대권 선생님도 이랬을 것이다. 오랫동안 감옥에 살며 자기 자신의 만성 기관지염을 고쳐 보려고 풀을 뜯어 먹다가 이 세상 어느 곳이나 무수하게 자라나 있는 수많은 잡풀들을 보고 그이도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을 얻었으리라.
시시때때로 그 어느 곳을 보아도 풀들은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이 다 경이로웠을 그 환희와 기쁨이야말로 생명력의 박동 소리였을 것이고, 내가 살아 있다는 확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푸른 숨결을 온몸으로 깊이 들이마셨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목숨을 가진 것들에 대한 찬사다. 아니, 생명을 가진 것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불의와 생명을 가진 것들을 죽이는 테러와 전쟁과 재앙과 재난에 대한 이의 제기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길가에 피어 있는 쑥부쟁이 꽃을 보고 자기와 쑥부쟁이가 한몸이 되는 자연과의 일체감과 해방감을 느끼고 무한한 세상의 이치와 가치를 터득하고 깨닫고 세상을 바로 세우게 하는 풀들의 몸을 그리고 풀의 이야기를 썼을 것이다.
잡초들이 빽빽하게 자라는 풀밭을 걸으며 거기 무수히 많은 벌레들이 기어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발길을 함부로 내딛지 않는다. ‘야생초편지’는 여러분을 이 지구가 영원히 사는 푸른 생명의 바다로 데려다 줄 것이다.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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