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현대판 공양미 삼백석 노인 510명 눈 뜨셨네

  • 입력 2005년 5월 20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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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전남 곡성군에서 열린 심청축제 중 ‘공양미 삼백석’ 모으기 행사. 유치원생들이 집에서 가져온 쌀을 쏟아 붓고 있다. 사진 제공 곡성군
지난해 10월 전남 곡성군에서 열린 심청축제 중 ‘공양미 삼백석’ 모으기 행사. 유치원생들이 집에서 가져온 쌀을 쏟아 붓고 있다. 사진 제공 곡성군
“눈이 침침해 밥을 지어먹기도 힘들었는데 이젠 세상이 환하게 보입니다.”

1종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정오남(82·전남 곡성군 입면) 할머니는 6일 전북 남원시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검사비, 수술비 등으로 70여만 원이 들지만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정 할머니는 “아직 인공수정체를 떼내지 않았지만 시력이 예전보다 몰라보게 좋아졌다”며 환하게 웃었다.

정 할머니가 무료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공양미 삼백석’ 덕분이었다. 현대판 공양미 삼백석이 백내장, 녹내장, 당뇨성망막증을 앓고 있는 노인들에게 밝은 빛을 선사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나 나옴직한 얘기지만 실제로 노인 510명이 뿌옇게 보이던 시력을 되찾았다.

십시일반 모은 공양미 삼백석으로 노인들의 개안(開眼)시술에 나서고 있는 곳은 전남 곡성군. 공양미 삼백석 모으기는 효의 고장임을 알리기 위해 2001년부터 ‘심청 축제’를 열고 있는 곡성군 심청축제추진위원회가 벌이는 자선 이벤트다.

자선행사 아이디어는 고현석(高玄錫) 현 곡성군수의 부인인 김화중(金花中)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냈다. 효녀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석에 목숨을 내놨던 소설의 이야기를 재현해 보자는 것이었다.

매년 10월 축제 행사장에는 쌀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축제 관람객들은 공양미 삼백석이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의 개안 수술비용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고 흔쾌히 성금을 내놓고 있다. 유치원생들도 고사리 손으로 정성을 보태고 일부 학교에서는 직접 쌀을 가져와 기증하기도 한다. 은행계좌로 성금을 보내는 독지가와 출향 인사들도 많다.

이렇게 해서 3년 동안 모아진 돈이 1억4942만3000원. 시술 첫해인 2002년에는 노인 179명이 수술을 받았고, 2003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183명과 148명이 밝은 빛을 되찾았다.

지난해 7월 백내장 수술을 받은 유장근(76·전남 여수시 화정면) 씨는 “안압이 높아 눈이 빠질 듯 아프고 시력도 크게 떨어졌지만 비용 때문에 수술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면서 “밝은 세상을 보니 내가 심청이 아버지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심청축제추진위원회는 올해도 전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지난해 모금한 4077만 원으로 전남 지역 60세 이상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300여 명에게 수술을 해 줄 계획이다.

박원홍(朴元洪) 곡성군 보건의료과장은 “수술을 받은 노인들이 보건소를 찾아와 직원들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눈물을 흘릴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곡성=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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