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외국인 노동자 홀대는 일제 민족차별의 유산”

  • 입력 2005년 5월 18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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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종차별적 노동조건에 항의하는 외국인노동자. 한국인의 중국과 동남아 출신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식민지 주민을 서열화하는 방식으로 지배와 복종을 내면화한 일제 파시즘의 잔재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국의 인종차별적 노동조건에 항의하는 외국인노동자. 한국인의 중국과 동남아 출신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식민지 주민을 서열화하는 방식으로 지배와 복종을 내면화한 일제 파시즘의 잔재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중국이나 동남아출신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 의식, ‘땡땡이’ 같은 개인적 일탈행위를 시스템에 대한 반항으로 간주하는 사회 분위기, ‘정경유착의 효율성’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

흔히 ‘한국병’으로 일컬어지는 이런 병리현상들이 일제 파시즘이 우리 일상에 남긴 흔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일제파시즘연구팀은 20일 연세대 상남경영원 로즈우드룸에서 열리는 ‘식민지 파시즘의 유산과 극복의 과제‘라는 주제의 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한다.

이준식 연구교수는 ‘우리’와 ‘남’을 구분해 차별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인식은 한국사회의 전통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이식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인종차별이 서양인과 동양인에 대해 다르고, 같은 한민족이라도 재미동포와 재중동포에 대한 태도가 다른 것에 주목했다. 이는 일제가 식민지 각 지역을 위계적으로 서열화함으로써 지배와 복종을 철저히 내면화시킨 독특한 식민지배 방식의 결과라는 것이 이 교수의 분석이다.

즉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구호에 현혹된 한국인들이 ‘일본의 2등 신민’이라는 잘못된 우월감으로 중국인과 동남아인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인식이 뿌리내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중국인을 비하하는 ‘짱꼴라’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유래했음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또 일본의 만주 및 동남아 진출 후 식민지 조선에서 만주 붐, 동남아 붐이 일었던 배후에 일본으로부터 받은 차별과 억압을 그 지역 주민들에게 전이하려는 ‘아류 제국주의’가 숨어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이를 “일상생활에서 상위자로부터의 억압이 하위자에게 차례로 옮겨지는 일본인 특유의 ‘억압 이양의 원리’가 식민지 조선에 이식된 결과”라면서 “우리가 일본에 대해 떳떳한 자세를 취하기 위해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명아 연구교수는 학생들의 땡땡이, 노동자의 지각 등 ‘골치덩이’들의 비정치적 일탈행위를 체제에 대한 반항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도 일제강점기의 유산이라고 분석했다.

권 교수는 “불성실과 비아냥, 넌센스로 일관하는 골치덩어리들의 행위 방식은 목적의식적 저항은 아니었지만 파시즘적 통제가 수미일관하게 작동하는데 걸림돌이 되므로 억압의 대상이 됐다”며 “일상에 대한 일제 파시즘의 통제는 모든 개개인의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선택들을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경란 연구교수는 국가의 통제 및 국가와 독점 자본의 유착을 특징으로 하는 ‘전시통제경제체제’를 선망하는 인식이 한국자본주의의 파행을 낳는 요소가 됐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위한 비상 동원체제였던 전시통제경제체제가 사회적 공공성과 균등성을 강조하고 효율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조선 경제의 문제를 해소할 대안이라는 인식이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퍼졌다”며 “그 같은 인식이 광복 후 성장우선주의의 배경이 됐다”고 밝혔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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