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 vs 論]초등생 일기검사 인권침해 논란

  • 입력 2005년 4월 10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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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다원화될수록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는 이슈들이 적지 않게 발생합니다. 본보는 이 같은 쟁점들에 대한 양측의 주장을 대비해 보여주는 ‘論 vs 論’ 난을 신설했습니다. ‘論 vs 論’은 핫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수시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그 첫 회로 7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초등학생 일기장 검사 관행이 아동의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의견을 표명한 것에 대한 찬반양론을 다루었습니다.》

▼인권침해다…사생활 엿보기 아닌가▼

책가방 검사는 물론 편지나 일기를 수시로 보는 외할머니가 너무 싫었던 어머니는, 나중에 당신 자식들에게는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 결심하셨단다. 그래서 결코 우리 형제들의 책가방이나 일기를 보는 일이 없었다. 준비물을 놓고 가 야단맞는 일은 종종 생겼지만, 친구의 비밀 편지와 만화책을 숨기거나 서랍에 자물쇠를 채울 필요가 없었다. 그 대신 어머니에게 할 말이 있거나 말로 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으면 편지를 썼다.

▶ 초등학교 ‘일기장 검사’ 인권 침해인가?(POLL)

그렇지만 학교에서의 일기 검사만은 피할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별로 관심도 없는 ‘오늘의 날씨’를 표시해야 했고, 떠오르는 해를 배경으로 체조하는 소년 그림 옆에 ‘오늘의 중요한 일, 오늘의 반성, 내일의 할 일’을 적어야 했던 일기장은 그저 또 하나의 숙제장일 뿐이었다.

방학 마지막 날 밀린 일기를 몰아 쓰느라 친구 일기장을 빌려 날씨를 베끼고 칸을 채우려고 억지로 동시를 지어 쓸 때 그것은 기억이나 소중한 삶의 기록이 아니라 지겨운 숙제의 상징이었다.

당연히 마음 속 진짜 이야기는 절대 쓰지 않았고 학년이 지나 다른 공책들을 버릴 때 같이 폐휴지 함에 넣었다.

그 기억 덕분에 나에게 일기는 시키는 대로 해야 했던 안 좋은 추억으로 남아 정말 친해지기 힘든 상대였다.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 이후 몇 년 동안은 검사도 없는 일기를 왜 쓰느냐며 한참을 멀리 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겨우 이런 마음의 무장이 해제되어 가끔 쓰게 되었다.

유치하고 촌스러운 감정이 덕지덕지한 그때의 일기는, 여전히 문득문득 꺼내 읽는 소중한 기록이 되어 남아 있다.

만약 그때도 누군가에게 검사를 받아야 했다면, 과연 창피하지만 아름다운 그 기억, 유치한 기쁨과 찬란한 슬픔들이 오롯이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국가인권위원회 의견을 계기로 초등학교 일기 검사에 관한 논란이 적지 않은 듯하다. 당연히 계속해 왔던 것을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보게 한 것이야말로 이 의견의 성과라고 보이지만 주로 선생님들이 당혹스러워 한다고 한다.

교사가 아이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하는 일이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불쾌하고, 인권위가 일기 지도의 효용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며 교사의 독립성 자주성에 속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나는 일기 쓰기의 효용을 인정하고 선생님이 일기 쓰는 즐거움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장려하는 일을 지지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썼는지 검사하고 내용까지 보고 심지어 점수를 매기거나 상까지 주게 되면 일기는 숙제가 되어 버린다.

나는 또한 교육에 관한 교사의 자주성을 전적으로 옹호한다.

교사들은 관리자 국가기관 학부모들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독립해 교육 내용과 방법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권리를 누려야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아이들의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 그 본질로부터 자유로운 교권은 없다.

그리고 아이들의 인권 지키기란 그저 어른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을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강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더 생각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일기, 아이들에게도 즐거운 일기 쓰기의 기억을 허하자.

김 진 변호사

▼인권침해 아니다…바른 품성-글쓰기 교육▼

초등학교에서의 일기장 검사 또는 일기 쓰기 지도는 어느 누가 강요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담임교사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지며 높은 효과가 기대되는 교육 방법이다.

하지만 이번 국가인권위원회의 제안은 교사의 일기 쓰기 지도를 마치 학생들의 양심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듯이 속단해 교육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으로 보여 유감이다. 인권위의 지적에 일부 동의하는 바도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겉만 보고 속을 보지 못한 판단으로 생각한다.

초등학생 일기 쓰기 지도는 다음과 같은 교육적 측면에서 이뤄져야 한다.

먼저 일기는 하루의 생활을 날마다 기록한 개인의 소중한 삶의 역사이자 생활의 기록이다.

둘째, 일기는 좋은 생활 습관을 형성하도록 도와준다.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뒤돌아보면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좋은 일을 계획해 실천하는 계기가 된다.

셋째, 관찰력과 탐구력을 길러준다. 사물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안목을 넓히는 능력을 길러준다.

넷째, 문장력과 표현능력을 길러준다. 어느 한 소재를 골라 일기를 써보면서 문맥이나 문장구성, 어휘사용은 적합한지, 맞춤법에 맞도록 썼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다섯째, 일기는 자기가 한 일, 본 일, 느낀 일, 생각한 일 등을 바른 생각으로 거짓 없이 쓰게 한다. 일기는 자기를 비춰보는 마음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교사의 일기장 검사는 어린이의 자유로운 사적 활동 영위를 방해해 솔직한 서술을 사전에 억제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지적에 그대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학기 초 담임교사와 처음 만나 낯설거나 교사와 심적 공감이 부족한 경우 또는 눈치를 제법 살피는 고학년 여자어린이들의 경우에는 거짓 일기를 쓸 수도 있다.

그러나 한두 달이 지나면 교사와 어린이들은 친해지고 공감이 형성되며 일기장은 교사와 어린이의 비밀스러운 만남의 장, 대화의 공간이 된다. 어린이는 가정불화나 말 못할 고민거리, 집단따돌림(왕따)이나 폭력에 대해서도 쓴다.

담임교사와 마주앉아 상담하기 어렵거나 직접 말하기 부끄러울 때 일기장에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사의 답변을 기다린다.

교사는 어린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잘못에 대해 조언하며 그 과정에서 어린이가 깨달아가도록 이끌어준다. 일기 속에서 교사와 어린이들은 자유롭고 솔직하게 만나 함께 고민하고 이해하는 또 하나의 진정한 ‘가르침’이 이뤄지는 것이다.

인권위가 말한 것처럼 글짓기 능력 향상이나 글씨 공부 등은 일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작문 등을 통한 다른 방법을 통해 달성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어린이들이 쓰는 글이란 대부분 생활 속의 경험과 체험의 기록이다. 일기는 자기 생활주변에서 일어났던 일을 글감으로 자기 느낌과 생각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글쓰기 지도방법인 것이다.

시상이나 평가의 잣대로 활용하거나 강제로 쓰게 하는 등 방법상의 문제점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초등학생 일기 쓰기 지도는 교사들의 교육자적인 양심과 교육적 판단에 맡겨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상돈 서울숭덕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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