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지친 40, 50대 가장들, 특전사서 재기 다짐

  • 입력 2005년 1월 20일 1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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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 수 있다”인천 특수전사령부 예하 귀성부대에서 실시하는 3박4일간의 동계 병영캠프에 참가한 40, 50대 가장들이 20일 오전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쪼그려걷기를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정선복 노재용 이동구 오상훈 씨. 인천=안철민  기자
“나는 할 수 있다”
인천 특수전사령부 예하 귀성부대에서 실시하는 3박4일간의 동계 병영캠프에 참가한 40, 50대 가장들이 20일 오전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쪼그려걷기를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정선복 노재용 이동구 오상훈 씨. 인천=안철민 기자
“힘들더라도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끝까지 버티십시오. 비록 3박4일의 짧은 훈련이지만 인내력과 자신감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일 오전 10시 인천의 특수전사령부 예하 귀성부대 화생방훈련장. 이 부대가 운영하는 병영캠프에 18일 입소한 교육생 187명이 얼룩무늬 군복에 검은 베레모를 쓴 채 PT체조를 하고 있다.

한 교육생이 구령을 잘못 붙이는 바람에 단체로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치며 팔굽혀 펴기, 쪼그려 앉아 뛰며 돌기 등 기합을 받느라 교육생들은 모두 땀으로 뒤범벅이 됐다.

교육생 대부분은 부모의 권유로 참가한 남녀 중고교생과 대학생 등이지만 건설업에 종사하는 정선복 씨(54) 등 40, 50대 남자 6명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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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 병영캠프에 입소한 중년 가장들이 첫날 훈련을 마친 18일 밤 가족들에게 띄운 편지. 부인과 자녀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 구절구절 배어난다.

이들 중년 남자는 왜 정초부터 특전사를 찾아와 극기 훈련을 자처하고 나선 것일까.

“지난해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정말 지긋지긋했어요. 하지만 올해는 내 자신을 담금질해 다시 일어설 겁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정 씨가 “지난해 국내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와 사회 모든 분야가 엉망이었고 정상이 아니었다”고 운을 떼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이동구 씨(47)는 “새해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어둡고 긴 터널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서 왔다”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는 오상훈 씨(45)는 “캠프에 참가한다고 안 풀리는 사업이 번창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고된 훈련을 통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훈련 참가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목적은 대부분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특전사의 신조처럼 ‘무력해진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 강한 자신감을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사병식당에서 비빔밥과 미역국 등으로 점심식사를 한 교육생들은 담력 배양훈련을 위해 인천 중구 을왕리의 한 바닷가로 이동했다. 귀를 찢을 듯이 찬 바닷바람 속에서 PT체조가 이어졌다.

“동작 보십시오. 동작 그만. 고립무원의 적지에 들어가 작전을 수행하는 특전사 교육생이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전체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앞으로 취침….”

대한(大寒) 추위가 무색하게 땀방울을 흘리며 ‘중년의 훈련병들’은 서로를 격려했다.

“사업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아 착잡하고 초조했어요.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시작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어요.”(조그만 사업을 한다는 송용섭 씨·43)

“올해 경기도 불투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각오를 갖고 도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습니까.”(건설사 대표 노재용 씨·43)

파란 모자를 눌러 쓴 교관이 교육생들에게 몇 차례 기합을 더 준 뒤 ‘입수명령’을 내렸다.

“자, 지금부터 사랑하는 가족 이름을 부르며 바닷물에 입수합니다. 실시.”

교육생들은 함성을 지르며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여보, 아들아. 나는 할 수 있다!”

귀성부대(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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