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태훈]주부를 ‘죄인’ 만드는 쓰레기 분리 지침

  • 입력 2005년 1월 13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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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

손님들이 남기고 간 조개탕의 조개를 종업원들이 음식물쓰레기통에 쓸어 담고 있었다. 조개껍데기는 올해 1월부터 음식물쓰레기로 버려선 안 된다. 그러나 음식점 주인은 “수많은 조개에서 살과 껍데기를 일일이 분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구청에) 적발되면 과태료를 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경기 수원시에 사는 독자 박병화 씨는 기자에게 e메일을 보내 음식물쓰레기 처리에 관한 불만을 토로했다.

“아파트 경비원의 감시를 받으며 주부들은 죄인처럼 쓰레기를 들고 다닙니다. 이런 게 바로 국민의 처지와 편의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개악’ 아닙니까?”

음식물쓰레기 분류 배출제가 본격 시행된 지 거의 2주일이 됐지만 시민의 원성은 끊이지 않는다. ‘시행 초기의 적응 과정에서 빚어지는 사소한 불편’이라고 넘길 수 없는 내용이 상당수다. 이번 파동을 취재하면서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시민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칠 제도를 시행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허술하게 준비했을까 하는 점이다.

환경부와 서울시, 경기도 등이 음식물쓰레기와 일반쓰레기를 분류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제도가 시행된 지 닷새가 지난 5일이었다.

그나마 환경부는 나중에 홈페이지에서 “가이드라인은 그냥 참고용일 뿐”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또 “혼동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은 가급적 음식물쓰레기로 배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종량제봉투에 배출해도 된다”고 안내하는 등 모호한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일선 시군에선 가정에서 분류 배출 기준에 어긋나게 음식물을 내놓아도 방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지역별로 배출되는 음식물쓰레기 종류가 다르고 또 처리시설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통일된 배출 기준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제도 시행 전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마련된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별로 지역 실정에 맞는 분류 기준 세안을 마련해 제시하는 게 마땅하지 않았을까. 관할 기관들은 이제야 분류기준 홍보전단과 스티커 제작을 의뢰하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 기본적인 준비도 없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 제도를 시행했는지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황태훈 사회부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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