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점수 매긴다… 아이디어 내놔라” 공무원들 ‘革新 피로’

  • 입력 2004년 12월 3일 18시 23분


지난달 12일 모 중앙부처의 혁신사례 발표회장에서 이뤄진 단막극.

혁신담당관실 직원들이 ‘복지부동’ ‘무관심’ ‘냉소’라고 적힌 문구를 목에 걸고 ‘혁신 이전의 공무원’ 역할을 했다.

이들이 민원인의 전화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등 잘못된 공무원 행태를 보이자, 곧바로 거지가 등장해 이들을 향해 “나보다 상거지 떼 같다. 국민 세금을 얻어 쓰는 주제에…”라며 조롱한다.

결국 공무원들은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공무원’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으로 혁신단막극은 끝났다.

이를 지켜본 한 공무원은 “아무리 연극이지만 좀 심했다”며 씁쓸해 했다.

올해 들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핵심 개혁과제로 정부혁신을 자주 강조하면서 공무원 사회에 혁신 열풍이 불고 있다.

혁신운동으로 건설적인 업무개선 아이디어가 제시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때로는 ‘혁신 지상주의’가 나타나면서 상당수 공무원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무원 사회도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지만 사상개조에 가까운 혁신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혁신 노이로제에 걸린 공무원들=일부 부처의 경우 개인별, 부서별로 ‘혁신 점수’를 매기고 있다. 이에 따라 실제업무보다는 혁신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 부처의 A 과장은 “학습동아리 등을 운영하거나 참여하면 좋은 혁신 점수를 받기 때문에 때 아닌 동호회 모임이 급격하게 늘었다”고 말했다.

최근 혁신 관련 교육을 받은 공무원은 “‘혁신’이라는 말을 너무 강조해 마치 사상개조를 강요받은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잇따르는 공직사회 실험=정부는 올해 1월 중앙부처 국장급 인사를 맞바꾸는 제도를 시행했다. 이어 1∼3급(실국장) 공무원들의 직급을 없애고 이들을 범정부 차원에서 통합 관리하는 고위 공무원단 제도를 내년 중 확정할 방침이다.

공직사회를 대상으로 새로운 제도의 실험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성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실제로 국장급 인사교류 제도의 경우 해당 국장들의 경험의 폭을 넓혀 줬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제도시행 1년째인 내년 1월을 앞두고 벌써부터 각 부처에서는 이들의 복귀, 추가 파견 등의 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역할이 지나치게 커진 것도 부처 공무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정부 부처의 B 과장은 “위원회가 정책을 주도하다 보니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친 정책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세대 나태준(羅泰俊·행정학) 교수는 “일방적으로 위에서 지시하는 개혁은 공무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켜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종식 기자 kong@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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