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진곤]우리는 어떤 학생을 원하나

  • 입력 2004년 10월 31일 18시 11분


교육인적자원부가 최근 발표한 대학입학제도 개선안의 골격은 내신을 강화하기 위하여 석차 등급제를 도입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제를 폐지하여 등급제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학은 고등학교의 내신 성적은 전형자료로 그다지 쓸모가 없고, 수능 점수마저 폐지하면 무엇을 가지고 학생을 뽑느냐고 불평한다. 학생들은 내신을 강화하게 되면 옛날로 되돌아가 한 반 친구들이 경쟁상대가 될 것이고, 또한 면접이나 논술 준비를 위해 학원에 다녀야만 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학업능력만 평가해선 곤란▼

대입제도는 사실상 초중고등학교 교육의 모습을 결정짓는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일류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학교에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류대학을 없애지 않는 한, 입시위주의 교육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일류대학을 없애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다. 해결책은 제대로 된 대입제도를 만들어, 대학입학을 위한 경쟁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경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수능시험제도 등은 미국에서 수입한 것이지만, 미국대학에서 이를 입시에 반영하는 방식은 우리와 매우 다르다. 미국의 일류대학들은 결코 우리나라와 같이 수능점수(SAT)나 내신 점수만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 수능 점수 20∼30점은 연습에 의해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는 점수이며, 그 차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류대학들은 수능점수를 입시에 거의 반영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학생이 얼마만큼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행하였으며, 지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수준 높은 교과목에 도전하여 왔고, 과연 대학 공부를 잘 해낼 수 있는 학업능력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또 학업능력이 뛰어나다고 무조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밤낮없이 그저 공부만 하는 학생을 대학은 원하지 않는다.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방과 후에는 운동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피아노도 칠 줄 아는 학생을 좋아한다. 체육과 예술 등에 남다른 특기가 있으면 가산점을 받는다. 나아가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이끌어나갈 수 있는 지도력, 자신의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쓸 줄 아는 봉사정신을 갖추어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입학을 결정한다. 우리같이 어느 한 가지만 잘해서는 일류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 지덕체를 골고루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 그리고 앞으로 그렇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인재들을 받아들여 사회지도자로 키워낸다. 물론 학생이 모자라는 비일류대학들은 그 정도로 따지지 않는다.

우리도 입시제도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무조건 바꾸지만 말고,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부터 출발하여 정기적으로 접근해 가자. 우선 교육을 통해서 길러내고자 하는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이며,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떻게 생활하며,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하여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 그러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기 위해서는 학교제도, 교육행정, 교육과정, 교원제도 등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 것인가를 연구해 이를 단계적으로 정착시켜 나가자. 동시에 어떤 형태의 대입제도를 통하여 그러한 교육이 정착될 수 있도록 할 것인지를 생각하자.

▼교육 목표따라 入試개선을▼

입시 때문에 교육이 망가진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훌륭한 입시제도를 만들어 비뚤어진 교육을 바로잡아 보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8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이러한 방향에서 입시제도를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좋은 결실이 있기를 기대한다.

정진곤 한양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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