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동서남북/金지사의 ‘말 바꾸기’

  • 입력 2004년 10월 20일 20시 53분


김태호(金台鎬) 경남도지사는 ‘믿음’ ‘미래’ ‘비전’ ‘역동’ 등의 단어를 즐겨 쓴다. 그러나 알맹이가 적은 탓인지 “뭔가 허전하다”는 평가도 있다. 이런 말들이 부메랑이 돼 취임 4개월을 갓 넘긴 그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공무원노조 경남본부는 최근 ‘거짓말쟁이 도지사는 각성하라’며 도청에서 6일간 농성을 벌였다. 19일에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라”고 비난했다. 김 지사가 ‘단체교섭을 하고 협약서에 서명하겠다’던 후보시절의 약속을 어긴 때문. 노조는 “공무원과의 언약을 뒤엎는다면 다른 공약(公約)도 공약(空約)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김 지사는 “공노조가 인정되지 않는데다 정부가 불이익을 주려한다”는 이유를 댄다. 일리는 있다. 사실 노조의 요구와 농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하지만 시비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김 지사다.

앞서 김 지사는 간부 인사에 이의를 제기하며 노조가 내민 ‘5급 이상 공무원 교류 때 노조 동의를 받겠다’는 협약서에 덜컥 서명했다. 이후 논란이 일자 그는 “인사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일 뿐 구속력은 없다”는 모호한 말을 되풀이 한다.

F1 자동차 대회도 그렇다. 선거 시기 ‘F1 유치 철회’를 외쳤다가 대회를 가져오는 쪽으로 방향을 튼 그는 국정감사 등에서 “백지화 공약으로 비쳤을 뿐”이라고 둘러댔다. F1 철회는 다른 후보와 대비된 그의 공약 중 하나였다.

공약은 유권자에 대한 약속이다. 합리성과 실현가능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표가 욕심나 어설픈 공약을 내놨다면 궤도 수정에 따른 설명을 먼저 해야 한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믿음’은 약속이 이행될 때 커진다.

김 지사는 자신이 거창군수로 재직할 당시 수해복구사업의 계약문제를 국감에서 제기한 국회의원에게 “아니면 말고 식의 삼류정치를 중단하라”고 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뒤 요리조리 비켜가는 행태와 ‘아니면 말고 식’은 어떻게 다를까.

‘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꾸민 말은 미덥지 않다(信言不美, 美言不信).’ 노자(老子)의 가르침이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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