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슬픈선택’ 90대 노인 치매 아내 죽인뒤 자살

  • 입력 2004년 10월 7일 00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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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던 90대 노인이 금실이 좋던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도 뒤따라 목을 매 숨졌다.

5일 오후 7시경 서울 구로구 오류동 D아파트에서 허모씨(92)와 아내 엄모씨(92)가 숨져 있는 것을 막내아들(50)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허씨는 ‘78년이나 함께 산 아내를 죽이는 독한 남편이 됐다. 아들에게 미안하고 살 만큼 살고 가니 너무 슬퍼하지는 마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경찰은 허씨가 아내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뒤 자신도 방안 옷장에 철사로 목을 매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허씨 부부는 30여년 전 전북 익산에서 서울로 와 폐지와 고물을 주우며 생활했다. 7남매인 자녀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했지만 부부는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기 싫다”며 자녀들 집 근처인 강서구 가양동에 따로 집을 구해 살았다.

부부가 끈질긴 설득에 못 이겨 미장공인 막내아들의 집으로 옮긴 것은 3년 전. 그러나 엄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건강한 편이던 허씨는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낮에는 고물과 폐품을 주워 하루 2000∼3000원을 벌었다. 그 와중에서도 허씨는 식사시간이면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식사를 챙기고 밤 12시에는 꼭 아내에게 우유나 미숫가루를 먹였다고 이웃주민들이 전했다.

그러나 엄씨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됐고 아내의 식사와 대소변 수발을 들던 허씨는 최근 들어 “이제 살만큼 살았다”거나 “할멈이 가면 나도 따라 가련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는 것.

허씨는 유서와 함께 폐품을 팔아 모은 돈 250만원을 자녀들에게 장례비로 남겼다.

서울 구로경찰서 이문수 형사과장은 “허씨 부부는 항상 함께 다녀 동네에서 금실이 좋은 사람들로 알려져 있었다”며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들도 사연을 듣고 모두 가슴 아파했다”고 말했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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