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어려워도 아이들은 외국으로”…유학박람회 이틀간 3만명

  • 입력 2004년 9월 19일 18시 41분


자주 바뀌는 입시제도와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 어려운 경제상황 때문에 자녀의 해외유학을 고려하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 19일 ‘제19회 해외유학·어학연수박람회’가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에는 오전부터 자녀의 손을 잡고 상담에 나선 학부모들로 크게 붐볐다. 권주훈기자
자주 바뀌는 입시제도와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 어려운 경제상황 때문에 자녀의 해외유학을 고려하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 19일 ‘제19회 해외유학·어학연수박람회’가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에는 오전부터 자녀의 손을 잡고 상담에 나선 학부모들로 크게 붐볐다. 권주훈기자
대기업인 H사에 다니는 유모씨(36·경기 수원시 탑동)는 곧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와 딸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다. 처음엔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의 영어 공부를 위해 해외연수를 고려했지만 이제는 가족 전체의 유학을 고려하고 있다.

유씨는 “아내와 함께 미국에서 1, 2년 영어 연수를 한 뒤 국내에 돌아와 학원을 차릴 계획”이라며 “더 늦기 전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직장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18, 19일 ‘제19회 해외유학·어학연수박람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 20대 대학생부터 40, 50대의 중고교생 자녀를 둔 부모까지 행사장은 유씨처럼 해외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일부 조기유학의 상담코너에서는 줄을 서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 행사를 주최한 한국전람측은 “춘계 박람회에는 약 2만5000명이 다녀갔지만 이번에는 이틀동안 약 3만명이 다녀갈 것”이라고 추정했다.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제8회 이민박람회’에 보다 훨씬 붐비는 모습이었다.

▽“국내교육이 싫다”=4년 동안 동남아시아에서 살다 지난해 귀국한 김모씨(40·여·강남구 청담동)는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의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한국의 교육 상황이 너무 이상하다”며 ‘선행학습’을 겨냥했다. 대부분의 6학년생들이 중학교 1학년 과정을 배우며 2학년 과정을 배우는 아이들도 많다는 것.

김씨는 “학원에서는 6학년을 대상으로 6학년 과정을 가르치지 않는다”며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공부에 내몰린다”고 말했다.

빈번하게 바뀌는 입시제도도 해외 유학을 고려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

세계유학정보센타의 정연희 부장은 “공부를 잘 하는 아이일수록 자주 바뀌는 입시제도와 내신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며 “부모들도 뒷바라지가 힘들다며 자녀에게 유학을 권한다”고 말했다.

박모씨(40·수원시 권선동)는 영어 때문에 4학년인 딸 김모양(10)의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4년 동안 매월 수십만원씩 들여 영어를 가르쳤지만 효과가 없다는 것.

박씨는 “영어를 못하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경쟁에 뒤처지는 세상”이라며 “국내에도 정부 차원에서 좋은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부는 개인의 사교육비 부담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취업하겠다”=국내의 경제불황 탓에 해외 취업을 고려한 해외유학도 크게 늘고 있다. 국내 취업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고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것이 주된 요인이다.

전문대에 다니는 김훈성씨(24·서울 노원구 상계동)는 해외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뒤 현지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씨는 “호텔에 입사하려면 실무 경력이 중요하다”며 “해외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뒤 해외에서 취업할 수 있다면 국내 취업에도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모씨(21·여·서울 중랑구 신내동)는 “생물학에서 권위있는 미국이나 영국의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싶다”며 “궁극적으로 외국에서 취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바다유학원의 박신아 과장은 “과거에는 단순히 영어를 배우기 위한 언어연수에 관심이 많았지만 최근엔 해외에서 학위를 따고 나아가 취업하려는 상담이 많다”고 말했다.

유니마스터 정세종 실장은 “과거에는 어학연수만 다녀와도 취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해외에서 획득한 학위나 취업경력이 있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한국전람 이홍규 대표이사는 “2000년부터 시작된 박람회를 찾는 연령대가 매년 낮아지고 있다”며 “전통적으로 인기 있는 선진국 외에도 피지 몰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떠나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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