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도원/위구르 ‘백양나무 논’의 가르침

  • 입력 2004년 8월 9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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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에 위구르인의 땅 중국 신장에 다녀왔다. 신장은 백양나무의 세계라 할 만했다. 어디를 가든 밭을 나누는 백양나무 숲 띠가 있고 길 양쪽으로는 백양나무 가로수가 보였다. 그런데 이들의 가로수는 특이했다. 나무가 심어진 바닥 부분을 논처럼 만들어 놓은 것. 경사가 아주 적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산골의 계단식 논을 그려 보면 된다. 그들의 논에는 벼 대신 나무가 심어져 있다. 좁고 긴 백양나무 계단 논이 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져 있다고 상상해 보면 된다.

백양나무 논은 마을로 들어서면 조금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물을 가두는 둑은 넓고도 높아 큰길로부터 대문으로 이어지는 출입로가 된다. 둑 사이에 줄지어 서 있는 백양나무들의 간격은 50∼70cm 정도로 빽빽하다. 그런 나무들이 4∼8겹으로 심어져 도로와 집을 에워싸고 있다. 물을 먹은 하얀 껍질의 백양나무는 하늘 높이 자란다. 키는 15∼20m 정도 돼 보였다. 낯선 땅에서 목격한 현상은 생태학자로서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런 구조는 과연 어떤 이점이 있을까 하고 말이다.

우선 빽빽하게 심어진 나무는 방풍 효과를 가진다. 무서운 사막의 모래 바람이 신장의 주변 마을을 덮치는 계절은 4, 5월이다. 심할 때는 날아온 모래에 집도 묻혀 버린다고 한다. 그때 백양나무 숲 띠가 효력을 발휘하리라. 여름이 오면 나무는 집과 도로에 짙은 그늘을 만들어 준다. 건조하고 뜨거운 사막 공기를 이겨 내는 데는 키가 큰 백양나무 녹음이 제격이다.

둑과 둑 사이에 자리 잡은 백양나무 논에는 위에서 흘러온 물이 잠깐 고인다. 물은 녹음과 함께 주변의 뜨거운 공기를 식히는 기능을 할 것이다. 이 물은 나무를 키우는 데 이용될 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연못을 이룬다. 시골마을에서는 가끔씩 그 안에서 집오리가 노는 모습이 보인다. 물이 빠져 나간 시골 백양나무 가로수 아래 초지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를 볼 수도 있다. 숲과 목축이 혼합된 형태다.

차가 다니는 큰길, 그리고 둑 위에 있거나 집의 담을 따라 나 있는 인도는 백양나무가 심어진 곳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게 특징이다. 그런 높낮이 차이는 먼지와 오물이 쌓이는 지저분한 길을 쉽게 청소할 수 있게 해 준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도로와 인도 위에 쌓인 것들이 백양나무 논으로 운반된다. 사람이 오물을 쓸어 넣는 광경도 보인다. 그렇게 쓸려 간 오물은 백양나무와 그 아래에서 자라는 풀을 키우는 영양 공급원으로 둔갑한다. 그렇게 자란 백양나무는 언젠가 목재가 될 것이요, 뿌리는 땔감으로 사용된다. 오물이 자원으로 바뀔 수 있는 생태기술이 발휘되는 현장이다.

이런 구조는 도시로 들어오면 약간 다른 형식을 띤다. 차도와 인도를 나누는 경계가 시골 도로에서 본 가로수 논둑처럼 만들어져 있는데 다만 구획을 주변보다 20∼30cm 높게 시멘트로 만들어 놓았다. 물은 높은 곳의 구획 안을 채우면 아래로 한 계단씩 흘러 내려간다.

이렇게 되면 도시의 가로수 논은 한 가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시멘트로 덮여 있는 도시에서 땅 속으로 물이 스며들 수 있게 해, 지하수를 채워 주는 숨통이 되는 것이다.

가로수 논. 사막지방의 사람들이 세세손손 삶에서 배운 생태 지혜를 이제 열섬 현상으로 고생하는 한국의 도시에서도 시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환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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