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비정규직 대책은 조삼모사 연봉제

  • 입력 2004년 7월 7일 16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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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우개선안이 아니라 구조조정안이다.”

교육부가 내놓은 '초.중등학교 비정규직 처우개선대책'이 지난 1일 시행되자 비정규직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교육부는 지난 1일부터 전국 초.중등학교의 교무보조원, 전산보조원, 영양사 등 9개 직종 종사자 6만1380명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도입했다.

연봉제의 골자는 근무일수를 8~9개월로 제한하되 이 임금을 12개월로 쪼개 방학 때도 월급을 주겠다는 것.

하지만 비정규직들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조삼모사(朝三暮四)’ 연봉제”라며 “근무일수를 늘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처우 개선하고보니 연봉이 줄어들어"▽

교육부의 연봉기준액은 10급 기능직 공무원 1호봉 기본급의 84% 수준인 1180만원.

여기에 직종별 근무일수를 275일, 245일 등으로 제한했고 연봉액수도 75%(275일/365일), 67%(245일/365일)로 차등 적용한다는 것이다.

또 실제 근무일수는 8~9개월인 반면 월급은 방학을 포함한 12개월 동안 나눠 받게 된다.

이같은 기준에 따라 근무일수가 늘어난 직종은 영양사(300일에서 365일로) 뿐이고 교무보조원(-90일) 과학보조원(-23일) 전산보조원 (-10일) 등 5개 직종의 근무일수는 275일로 줄었다.

연봉액도 영양사(276만원), 사서(263만원), 조리보조원(42만원) 등은 늘었지만 사무조원(-224만원) 교무보조원(-164만원) 전산보조원(-25만원) 은 줄어들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번 처우개선안은 고용 보장을 위한 것도 있지만 일정부분 방만한 근무형태를 바로잡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초등학교 전산보조원은 “컴퓨터 보수나 포맷을 여유있게 할 수 있는 시간은 방학 때 뿐”이라며 “실제로 컴퓨터 수업은 정규직 선생님이 해야하는 규정과 달리 전산보조원 혼자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반박했다.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정부 개선안▽

또 이같은 연봉 책정과 지급 방법에 따르면 비정규직들은 당장 연봉제 과도기인 올 7월부터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아야 한다.

내년 2월 말까지 잔여 근무일수 158일을 기준으로 연봉액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교무보조의 경우 내년 2월까지 8개월 동안 63만8517원의 월급을 받게 되는데 건강보험, 국민연금, 식대 등의 고정 공제액 13만원 정도를 공제하면 실수령액은 50만원 정도에 그친다.

정부 발표 최저임금은 56만7260원이다.

비정규직들이 “교육부 개선안은 사실 상의 구조조정안”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연봉제 과도기 중에 여름.겨울 방학이 끼어있어서 수령액이 적어졌다”며 “그래도 방학 때 일하지 않아도 돈이 지급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연봉제 안 받으면 재계약 불가"▽

또 다른 교육청 관계자는 “이같은 저임금은 과도기 현상일 뿐이고 84%의 대비율이 100%로 적용되는 2008년에는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작성한 ‘공립초중등학교 비정규직대책’에 따르면 2008년이 되더라도 사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는다.

교무보조의 현재 월급 85만 8700원(연봉 1030만4400원)은 ▶2005년 77만6333원(연봉 931만원) ▶2006년 81만1583원(연봉 973만원) ▶2007년 84만6333원 (연봉 1016만원) ▶2008년 88만2166원(연봉 1058만원)으로 변동된다.

총액을 놓고 보면 3~4년 만에야 비슷한 수준이 되는 것이다.

또 교육부 관계자는 “연봉제로 인해 임금이 낮아지는 사람은 기존 근무일수제를 채택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 지방 교육청은 최근 일선 학교에 ‘처우개선안’ 공문을 내려 보내면서 “연봉이 아닌 근무일수별로 보수를 받기 희망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사용자와 근무자간의 합의에 의해 계약 가능하나 향후 재계약 보장 및 처우개선 등 본 대책에 의한 권리주장은 불가함.” 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교육부의 설명과는 달리 비정규직의 연봉제 전환은 사실상의 ‘강제 조항’인 셈이다.

한 중학교 컴퓨터실에 근무하는 전산보조원 A씨는 “학교측에서는 이같은 공문을 토대로 무조건 교육청 시책을 강요하고 있다”며 “학교가 교육청 지침을 강조하는데 ‘연봉제를 거부하겠다’는 것은 ‘그만 두겠다’는 의사표시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A씨는 “비정규직의 신분 보장을 해준다면서 결국 교육부는 낮은 임금의 연봉제를 강요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김현 동아닷컴 기자 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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