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편입시험 '커닝’ 알선

  • 입력 2004년 4월 22일 15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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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 동안 서울 소재 대학 편입학시험에서 270여 차례나 부정행위가 저질러진 사실이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22일 무전기를 통해 편입학 시험 응시자에게 답을 알려주는 등 2000년부터 최근까지 274차례에 걸쳐 부정행위를 한 혐의(업무방해 등)로 주모씨(30·무직) 등 4명을 구속했다. 또 경찰은 주씨에게 100만~1000만원을 주고 부정행위를 부탁한 응시생 3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치밀한 '커닝' 알선= 주씨는 알고 지내던 모 케이블방송 기자 황모씨(31·구속)가 커닝을 도와줘 2000년 1월 서울 한 명문대에 편입학했다. 황씨는 영문과 출신인데다 어렸을 때 캐나다에서 산 경험도 있어 영어실력이 뛰어났다. 편입학 시험 과목은 영어 하나였다.

주씨는 이후 자기처럼 편입학을 원하는 사람에게 커닝을 알선해주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씨는 황씨와 동업을 하기로 하고 인터넷에서 편입학을 준비하는 응시생들에게 접근했다. 그는 "돈만 있으면 영어의 '영'자도 몰라도 명문대에 합격시켜준다. 돈은 합격 뒤에 보내도 된다"라고 광고에 나섰다. 또 주씨는 관심을 보이는 예비 응시생들을 직접 만나 상담을 한 뒤 상대방의 성격, 가정형편 등을 꼼꼼히 메모하는 등 '고객 관리'에도 신경을 썼다.

주씨는 이런 방법으로 83명과 계약서를 작성했다. 주씨는 황씨와 의견이 틀어져 계속 동업을 하기 어렵게 되자 2001년 6월부터는 역시 외국에서 살다 온 명문대 출신 박모씨(27·무직·구속)와 동업을 시작했다. 주씨는 합격 한 건당 평균 500만원, 최고 1000만원씩 받아 모두 수억 원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커닝 방법도 바뀌었다. 처음에는 답이 적힌 쪽지를 돌리는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했지만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주씨는 청계천 등에서 무전기를 구입했다. 편입학시험에 응시한 동업자 박씨가 시험장에서 무전기를 통해 신호로 정답을 알려주면 주씨가 학교 운동장에서 이를 받아 적은 뒤 수험생들에게 다시 무전기로 답을 불러준 것.

주씨는 이런 방법으로 서울 소재 11개 대학에서 83명에게 274차례에 걸쳐 부정시험을 알선했다. 경찰은 이 중 중복 합격을 포함해 125명이 합격, 68명은 등록까지 마쳤다고 밝혔다. 경찰은 불구속 입건한 30명 이외에 53명을 추가로 조사할 방침이다.

▽허술한 편입학 관리= 대부분 대학은 전문대 이상의 학력이 인정되면 편입학 시험 응시 자격을 주며 시험 과목도 영어 한 과목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시험 현장 감독이 엉망이었다는 점. 주씨는 경찰 조사에서 "박씨와 응시자들이 무전기와 이어폰을 주머니 속에 넣고 들어가도 아무 제재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응시자들은 무전기를 배에 차고, 이어폰은 왼쪽 팔목에 찬 뒤 시험장에 들어갔고 손으로 머리를 괴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이어폰에서 나오는 답을 받아 적었다. 주씨가 한꺼번에 10여 명 이상의 응시생들에게 무전기를 답을 불러준 적도 있었다.

또 경찰 조사결과 일부 대학에서는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은 응시자도 일단 시험을 치르게 한 뒤 나중에 합격자에 대해서만 신원확인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황씨와 박씨 등은 다른 사람의 인적사항을 이용해 응시할 수 있었고 이 덕에 한 사람이 몇 년 째 같은 학교에서 시험을 칠 경우 받게 될 의심도 피했다.

경찰 조사 결과 허술한 관리 탓에 S대 경영학과의 경우 2003년 전반기 편입학시험에서 모집인원 27명 중 13명이 주씨 도움으로 합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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