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전남지역 르포]"꿈도 희망도 함께 생매장" 눈물

입력 2003-12-23 18:30수정 2009-09-28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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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전남 순천시 서면 죽평마을 오리농장. 생석회가 곳곳에 뿌려지고 방역차가 연방 소독약을 뿌려대고 있는 오리농장 입구에서 죽은 채 널려 있는 오리를 바라보던 정해환(鄭海煥·49)씨는 “억장이 무너진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정씨 농장에 조류독감으로 보이는 바이러스가 번진 것은 18일경. 충남 천안시 북면 오리 부화장에서 지난달 초부터 4차례 걸쳐 4만2500마리의 새끼 오리를 공급받은 정씨는 17일부터 수십마리가 비틀거리는 것을 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20일 하루 동안 3000여마리가 콧물을 흘리거나 목이 뒤로 젖혀진 채 죽자 정씨는 당국에 조류독감 의심 신고를 했다. 23일까지 정씨 농장에서 폐사한 오리는 1만여마리.

“이틀간 죽은 오리를 치우다가 이제 지쳐 포기했습니다. 남은 오리라도 살리기 위해 사료를 주고 있지만 가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정씨는 지난해 5월 오리 사육이 전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땅을 빌려 축사를 짓고 오리를 키워왔다.

정씨는 닭 오리 등 육가공 전문업체인 전남 나주시 금천면 ㈜화인코리아와 위탁 사육계약을 맺었다. 부화장에서 보내준 새끼 오리를 45∼50일 정도 키워 회사에 납품했다. 정씨가 받은 오리 값은 마리당 800∼1000원. 하지만 화인코리아가 경영난을 겪으면서 5월부터는 오리 값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 회사는 19일 부도가 났다.

“회사에서 못 받은 돈이 1억원이 넘습니다. 오리 사육을 그만둘 수도 없어 농협에서 대출을 받다 보니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 두달 전 집이 경매 처분되고 전화도 끊겼습니다.”

정씨는 “집이 없어도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며 오리를 키우려고 했는데 이제 꿈도 희망도 사라졌다”면서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전남 지역에서 조류독감이 처음 확인된 나주시 산포면 일대는 마을 곳곳에 통제초소가 설치되고 방역차량과 군부대 차량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뿌연 횟가루가 날려 화생방 전쟁터를 연상케 했다.

22일 나주시 산포면 민모씨(58) 오리농장의 반경 3km 이내에 있는 오리 7만9000여마리가 도살처분됐으며 23일에는 4만6600마리가 생매장됐다.

금천면 C농장 조모씨(50)는 “화인코리아의 부도에다 조류독감까지 겹치면서 농가마다 최소한 1년은 오리농사를 포기해야 할 형편”이라며 “당국의 보상이 언제쯤, 어느 규모로 이뤄질지 몰라 농민들이 망연자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순천=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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