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석학 로버트 실러 예일大 교수에게 듣는다

  • 입력 2003년 11월 24일 17시 53분


《미국 예일대 로버트 실러 교수는 “현재 한국 증시가 미국 증시와 동조화 경향이 강하지만 앞으로는 별개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금융과 정보기술(IT)의 발달에 따라 자본주의의 역동성으로 인해 야기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게 된다”며 자본주의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관측했다. 세계적 정치경제학자인 실러 교수는 최근 본보와 두 차례에 걸쳐 가진 e메일 인터뷰에서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번 주 방한해 금융연구원과 증권연구원 등에서 잇따라 강연할 예정이다.》

―주식시장이 세계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어떻게 보고 있는가.

“현재 미국 경제는 아주 좋아 보인다. 올 3·4분기(6∼9월) 중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연율(年率)로 환산해 전분기 대비 7.2% 상승했다. 하지만 다시 경기침체로 빠져들 수 있는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3·4분기 경제회복의 원인 중 하나가 세금을 환불해 줬다는 점인데 이것의 효과는 1회적이다. 아직 소비 지표인 소매 판매실적이 좋지 않다. 고용회복도 더디다. 이 때문에 경기에 대한 확신이 약해질 수 있다. 부동산 호황이 경제를 지탱했지만 그런 호황이 지속될 것 같지 않다.

―현재 미국 주식시장의 주가수익률(PER·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은 얼마인가. 현 수준이 유지되거나 상승할 수 있을까.

“미국 증시의 대표적 지수 가운데 하나인 S&P 500 지수 소속 기업들의 PER는 26이다. 주식시장 붐이 시작된 1995년 이전 역사적 평균치는 15에 불과했다. 역사적 기준에서 보면 현재 주가도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2000년 이래 PER가 급락했다. ‘이상 과열’이 출간되던 2000년 3월 PER는 46이었다. 현재 시장은 당시만큼 광란의 상태는 아니다. 현재 PER 26이 유지되거나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1920년대 말 대공황이 시작되기 직전 어빙 피셔(편집자 주:경제 분석에 수학적 방식을 도입한 근대경제이론의 개척자)는 당시 PER(33)가 유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주식시장도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PER는 10에 불과하다. 한국 주식시장은 미국시장과 연동되어 움직이고 있는데 양쪽 시장이 별개로 움직일 수 있다고 보는가.

“낮은 PER는 한국시장에 대한 매력을 높일 수 있다. 더구나 현재 미국의 무역수지가 악화됨에 따라 달러 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본다. 달러 약세가 나타나면 미국에 대한 투자는 더욱 큰 손해를 보게 된다. 별개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본다.”

―한국 증시에서는 외국인 투자의 비중이 높다. 더구나 외국인의 국내 주식시장 투자 비율은 40%인데 거의 100%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 때문에 외국인의 매매 패턴에 따라 주가가 급변하고 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시장의 가격 변동성을 막는 것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그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게 중요하다. 리스크 헤지(위험 회피)를 하고 투자를 다변화해야 한다. 외국인들이 한국 시장의 40% 이상을 투자한다면 한국인들은 세계 각국에 투자를 함으로써 위험을 회피해야 한다.”

―부동산 시장 거품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거품이란 미래에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대중의 기대가 과도해져서, 유지될 수 없는 수준까지 가격을 끌어올릴 때 발생한다. 사람들이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서 세를 놓게 되고 실수요자들도 투자자처럼 행동하게 된다. 그들은 더 기다리면 가격이 더욱 올라 집을 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적인 집값 상승이 급격한 가격하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가.

“1990년까지 세계적으로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런던 시드니 도쿄의 집값이 급락했고 해당 지역에 경기침체가 나타났다. 부동산 거품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붕괴된다. 도시민들은 부동산 가격의 변화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민감성 때문에 부동산 거품이 일어나고 거품이 붕괴되게 된다. 미국에서도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이 그랬다. 과거 서울에서도 그러한 현상이 나타났다.

―자본주의는 역동적이지만 불확실성을 창조한다는 당신의 글을 접하고 인상이 깊었던 기억이 있다.

“자본주의는 세계 성장의 엔진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역동성인 ‘창조적 파괴’는 엄청난 불확실성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사업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한 기업들은 새롭고 우수한 기업에 의해 시장에서 퇴출된다. 경제적으로 덜 생산적인 사람들은 시장에서 해고된다. 이것을 기업이나 개인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쨌든 그들의 경력은 거기서 멈추게 되고 과거 투자했던 것의 아주 일부만을 건질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누가 이들을 책임져야 하는가.

“이 불확실성 때문에 국가가 개인을 ‘시장의 무자비함’으로부터 보호하게 되었다. 19세기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했고 1930년대에 미국에서 뉴딜정책이 나왔다. 2차대전 후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체제가 형성된 것도 많은 나라들이 혼합적 복지국가 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정부는 시장의 힘을 통제하거나 조절하고 개인에게 사회안전망을 제공한다.

―그런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 유지비용이 너무 높아 경제적 역동성을 해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균형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개인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제 자본주의는 그러한 위험을 순화시킬 수 있는 방법도 만들어내고 있다.”

―자본주의가 스스로 민주화된 모습을 띠게 된다는 것인가?

“그렇다. 자본주의의 역동성은 각 사회구성원에게 리스크를 안겨주었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리스크를 보험, 투자분산, 헤지 등에 의해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IT의 발달로 일에 대한 인센티브를 줄이지 않으면서도 실업 등에 따른 위험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 또 금융혁신을 통해 우리가 사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될 수많은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게 돼 경제적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불평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보험을 통해 그들의 집을 화재나 파손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지만, 집값 하락에 따른 손실에는 어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집값 하락에도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도이체방크와 골드만삭스는 런던의 집값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지금은 런던 집값만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이런 상품은 세계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ykim@donga.com

▼약력 및 주요 저서 ▼

○ 주요 경력

▽1972년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 박사

▽1972∼82년 미 미네소타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교수 역임

▽1982∼현재 미 예일대 경제학 교수

○ 주요 저서

▽‘매크로 마켓:사회의 거대 경제위험 관리를 위한 제도'(1993)

▽‘이상 과열’(2000)

▽‘신금융질서:21세기의 리스크’(2003)

▼로버트 실러는 누구 ▼

로버트 실러 교수는 뉴욕 증시가 정점에 달한 2000년 3월 주가폭락을 예고한 저서 ‘이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을 출간했다. 주가수익률(PER) 관점에서 당시 뉴욕 증시의 PER가 1920년대 대공황 직전보다도 더욱 높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후 뉴욕과 세계증시가 급락하면서 예측능력을 인정받아 ‘스타’로 떠올랐다.

이 책에서 실러 교수는 90년대 말 주식시장 과열에 영향을 미친 12가지 요인을 분석했다. 인터넷, 냉전종식과 시장중심 체제의 승리, 인플레이션의 쇠퇴, 전후(戰後) 베이비붐 세대의 성장, 언론의 경제지면 확대와 증시에 대한 애널리스트들의 긍정적 평가, 연금과 투자신탁 산업의 확대, 도박기회가 확대되면서 일반인의 위험관리 인식이 옅어지게 된 것 등이다.

펀더멘털(경제의 기초적 조건)에 의해 주가가 지탱되는지, 아니면 어떤 ‘이상 과열(진실을 외면한 투자자들의 바람)’에 의해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개인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중요하다고 실러 교수는 강조한다.

우리가 과도하게 주식시장에 가치를 두게 된다면 새로운 기업의 탄생과 확대에 너무나 많은 투자를 하게 되는 반면 사회간접기반시설과 교육, 그리고 인적자산에 대한 투자를 적게 하게 된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다른 저서 ‘매크로 마켓’(1993)에서는 사회적 리스크의 제도적 안전장치 창설을 주창하여 1996년 폴 새뮤얼슨 상을 수상했다. 또 최근 출간한 ‘신금융질서’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의해 ‘2003년의 경영서적’으로 선정됐다.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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