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철이면…” 車엠블럼 수난시대

  • 입력 2003년 10월 22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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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스 승용차의 독수리를 가지면 연세대, 그랜저XG의 상아(象牙)를 가지면 명문대.’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11월 5일)을 앞둔 요즘 고급 승용차의 보닛에 달린 엠블럼(상징조형물)이 사람들의 손을 타면서 때 아닌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이들 승용차의 엠블럼을 가방이나 책상서랍에 넣고 시험을 치르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 사이에 ‘엠블럼 절도’가 유행하고 있다는 것.

22일 인천과 경기지역 아파트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인천 연수구 동춘동 동아금호아파트에서는 이달 들어 고급 승용차 8대의 엠블럼이 없어졌다.

인근 현대대림아파트 관리사무소에도 최근 5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또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시범단지 A아파트에서는 9월 말부터 최근까지 고급 승용차의 엠블럼 15개가 없어졌다.

이에 따라 아파트 경비원들은 인근 중고교 학생들의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또 차주의 양해를 얻어 고급 승용차들을 주차장 한쪽에 모아 밤새 감시하고 있다.

인천 모 고교 3학년 이모군(17)은 “좋은 대학에 입학하라는 뜻에서 에쿠스의 엠블럼을 친구에게 선물하는 것이 2학기부터 유행”이라고 말했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피해 주민이 많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경찰이나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에 신고하는 경우는 드물다. 부품 값을 포함해 2만∼3만원이면 다시 달 수 있기 때문이다.

연수구 동춘동에 사는 송모씨(42)는 “며칠 전 누군가가 승용차 그랜저XG에서 엠블럼을 떼어 갔다”며 “귀찮아 신고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몰고 다닌다”고 말했다.

인천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이전엔 경정비업체에서 엠블럼 주문이 그다지 많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최근엔 고급 승용차의 엠블럼 주문이 하루 평균 20∼30개씩 들어온다”고 말했다.

몇 년 전에는 수험생들 사이에 쏘나타 승용차의 영자 표기 중 ‘S’를 가지면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 글자를 떼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가천의대 길병원 김종훈 신경정신과장은 “시험을 앞두고 수험생들이 긴장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 차원에서 보이는 일종의 강박적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경찰 관계자는 “엠블럼을 떼다 걸리면 절도 혐의로 처벌 받는다”고 경고했다.

인천=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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