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私교육]1부 사교육의 실체<끝>-⑤학부모 커뮤니티

  • 입력 2003년 10월 21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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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의 교육을 위해 지난해 서울 강북지역에서 강남구 대치동으로 이사한 학부모 최모씨(33·여)는 “1년 동안 받은 차별과 수모를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며 혀를 찼다. 최씨는 이사 직후 초등학생에게 체육과목을 지도하는 인근 스포츠센터를 찾았다가 여직원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이 여직원이 “다른 학부모들의 동의 없이는 등록신청을 받을 수 없으니 먼저 동의를 받아 오세요”라고 말했던 것. 최씨는 “강남 지역에서는 ‘학부모 커뮤니티’에 들지 못하면 내 맘대로 아이 교육을 시킬 수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연재목록▼
- 1부 사교육의 실체 ①불황은 없다
-1부 사교육의 실체-②치열한 생존경쟁
-1부 사교육의 실체-③학원교육의 허실
-1부 사교육의 실체-④고액 과외 기승

일부 극성 학부모들의 배타적인 모임인 ‘학부모 커뮤니티’가 ‘사교육 1번지’의 풍속도를 좌우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끼리끼리 모여 사교육 관련 정보를 독점할수록 여기서 소외된 학부모들은 ‘내 자식만 뒤지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에 젖어 더욱 사교육 방안을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배타적인 ‘엄마 커뮤니티’=일부 강남 학부모들의 금기사항 가운데 하나는 ‘아이를 어느 학원에 보내느냐’고 묻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했다가는 ‘물정을 모르는 멍청이’가 되기 십상이다.

중학 3년생 학부모 박모씨는 “아들을 유명한 자립형사립고에 보낸 이웃에게 ‘어느 학원에 다녔어요’ 하고 물으니 ‘혼자 공부했어요’라고 밉상스럽게 말하더라”면서 “아이가 어릴 때부터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안 받은 과외가 없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다 안다”고 말했다.

이모씨(40)는 “글짓기를 잘 가르친다는 학원을 엄마들에게 물어봤더니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서 “겨우 수소문해 찾아갔더니 대기생이 수십명이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평소 식사 등을 함께 하며 어울리다 ‘어느 학원 어느 강사가 능력 있더라’는 정보가 입수되면 강사를 초빙해 그룹과외를 시키거나 그곳으로 자녀의 학원을 옮기기도 한다.

서울 서초구 L학원장은 “집단으로 등록하는 학생들이 전체의 80%가량”이라며 “이들 엄마 중 일부는 ‘돈을 더 낼 테니 반을 따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만들어지나=자녀가 초등학생일 때까지는 유치원 때부터 알던 ‘원주민 엄마’로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이 많다. 사교육 정보를 잘 아는 ‘팀장 엄마’를 중심으로 5∼10명의 학부모가 뭉친다. ‘원주민 엄마’들은 이사온 학부모를 따돌리기 때문에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이사하려는 학부모들도 많다.

과외 그룹을 형성하지 못할 정도로 결원이 생기면 팀원들이 ‘심사’해 다른 학부모를 받아들인다. 남편 직업, 아이 성적, 아파트 평수, 차량 종류 등이 중요한 기준이다. 가정 형편이 비슷하지 않으면 과외비를 댈 형편이 못돼 중간에 이탈할 수밖에 없어 아예 처음부터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

한 학부모는 “심사를 받으러 갔더니 팀장 엄마가 얼굴을 찌푸리며 팀원들에게 눈치를 주더라”면서 “나중에 ‘옷차림이 허름해서 안 된다’고 했다기에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중고교생 학부모는 자녀의 성적이 기준이 된다. 중고교생 자녀가 공부를 잘 하거나 특정 분야에 재능이 있으면 서로 이 자녀의 엄마를 커뮤니티에 끌어들이려 경쟁하기도 한다.

대치동에서 학원을 경영한 적이 있는 J씨는 “전교 1등 학생의 엄마는 커뮤니티의 주요 공략 대상”이라며 “영어 수학을 잘 하는 학생도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학원 성패도 좌우=강남구 압구정동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박모씨는 “학부모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지 못한 학원이나 강사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학부모 커뮤니티는 학원의 중요한 마케팅 대상이다. 학부모 한 명만 잡으면 여러 명의 수강생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데다 다른 학부모들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상당하기 때문.

경력 15년의 한 강사는 “‘팀장 엄마’의 자녀나 성적이 좋은 학생이 결석하면 원장이 안절부절못한다”면서 “이런 학생이 학원을 그만두면 수강생들이 함께 떠나고 다른 학생들도 동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팀장 엄마’는 학부모들을 모으는 학원 상담실장으로 영입되기도 한다.

‘학부모 커뮤니티’는 이제 서울 강남 지역만의 현상이 아니다. 분당 일산 평촌 등 서울 인근 신도시와 지방 대도시 지역에서도 ‘학부모 커뮤니티’가 번지고 있다.

연세대 황상민(심리학) 교수는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르듯 아이들에게 능력 있는 강사만 연결해 주면 교육이 된다는 발상에서 생기는 현상”이라며 “일부 경제력과 시간적 여유를 지닌 학부모들이 교육 현장을 상품을 사고파는 ‘시장바닥’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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