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私교육]1부 사교육의 실체-②치열한 생존경쟁

  • 입력 2003년 10월 17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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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지역 C학원은 지난달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강의 만족도를 조사해 낮은 점수를 받은 강사 2명을 해고했다.

수강생들은 분기별로 ‘강사의 강의 내용이 충실한가’, ‘학교 시험을 철저히 대비해 주는가’, ‘진학 및 학습상담 내용은 좋은가’ 등의 항목에 대해 점수를 매겨 원장에게 제출한다. 강사 박모씨는 “평가시기가 다가오면 수강생에게 간식을 돌리거나 자신이 쓴 참고서를 나눠주는 등 선심을 쓰는 강사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 학원 원장은 “강사를 뽑을 때 ‘학생들의 만족도나 등록률이 저조하면 해고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채용한다”면서 “학생들의 불만사항을 즉시 강사에게 알려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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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사교육의 실체 ①불황은 없다

▽사교육의 냉혹한 경쟁체제=경쟁체제라는 측면만을 고려할 때 공교육과 사교육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비유되기도 한다.

사교육은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서 외면당하면 경쟁에서 뒤져 문을 닫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시로 강사를 퇴출하는 등 경쟁력 강화를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서울 강남지역에서는 매년 200∼300개의 학원이 경쟁에서 밀려 문을 닫을 정도다.

올해 초 경기 고양시 일산지역 중학생 전문 학원들 사이에 비상이 걸렸다. K학원 수강생의 특수목적고 진학 비율이 다른 학원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기 때문. 인근 학원들은 K학원의 강의내용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학생들이 이 학원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몇 군데는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학원 강사들은 항상 퇴출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교과와 강의 방식을 끊임없이 연구해 눈높이를 수강생에게 맞춘 강의를 하려고 노력한다. 이들의 눈에 신분이 안정된 공교육 교사들은 타성에 젖어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인기 전략도 등장=서울 J학원은 올해 6월 학원생 460여명을 상대로 학습 스트레스를 측정하는 심리검사를 실시했다. 의사와 심리치료사가 학원을 방문해 뇌파 검사와 심전도 검사 등을 통해 학생 개개인이 학업과 시험에 대해 느끼는 불안 정도를 측정하고 나름대로 처방을 내렸다. 이 학원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눈앞에 둔 수험생들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독감 예방접종도 했다.

학원들이 강사와 학생의 관계를 연예인과 팬클럽처럼 규정하는 전략도 등장했다. 학생들이 인터넷상에 ‘강사 팬클럽’을 조직해 상담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고 한 달에 한두 번 정기 모임을 갖는다. 온라인 교육업체 ‘이투스’의 양승윤 팀장은 “학벌이 좋고 화면을 잘 받는 30대 초반 온라인 강사의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사교육 경쟁체제의 부작용=학원간 생존경쟁은 단순한 강의에 그치지 않고 진학지도를 포함한 ‘토털 서비스’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진학지도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사교육의 상혼이 깃들기도 한다.

학부모 이모씨(41·서울 강남구 개포동)는 “학원의 광고 전단마다 제7차 교육과정 도입에 따라 심화학습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어 마음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특목고 입시를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중고교 과정을 배워야 한다며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것도 학원들의 그릇된 경쟁에서 빚어진 상술 가운데 하나다.

한국교육개발원 최상근(崔尙根) 학교교육본부장은 “학원들의 무분별한 경쟁이 왜곡된 교육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와 단기간의 성적 향상을 노리는 학원은 분명히 그 역할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사교육 분야에서 공교육의 우수한 교사들을 끊임없이 유혹해 빼내가는 바람에 공교육이 그만큼 부실해진다는 측면도 무시 못할 부작용이다.

교육방송(EBS)에서 명강사로 학생들 사이에 꽤 알려졌던 L교사는 얼마 전 모 학원의 ‘스타 강사’로 변신했다. 학교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교사들은 학원의 끊임없는 스카우트 대상이 된다. L교사는 연봉 1억원 이상을 제의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 H고 L교사는 “최근 한 학원에서 최고 대우를 해주겠다며 스카우트를 제의해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양재고 이준순 교감은 “학교에 실력이 뛰어나고 사명감 있는 교사들이 많이 있다”면서 “학원들이 우수한 교사를 고액 연봉 등으로 유혹해 가뜩이나 어려운 학교 교육을 부실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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