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날]‘노인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 입력 2003년 10월 1일 18시 42분


‘노인중산층’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과거 적당한 퇴직금과 적당한 은행이자로 그럭저럭 중산층으로 살아가던 노인들이 이제는 기본적인 생활 수단조차 포기한 채 쪼들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

조세연구원 성명재 연구위원에 따르면 2001년 60대의 소득불평등도가 30대에 비해 1.4배나 높았다. 고연령층일수록 분배상태가 악화되는 것. 경기 침체가 심해질수록 소득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경향이 있어 실제 올해 노인 소득불평등은 통계수치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빈곤층으로 전락한 노인중산층=중소 제조공장 관리부장으로 일하다 10년 전 은퇴한 박모씨(65·경기 용인시)는 최근 4년 동안 갖고 있던 휴대전화를 해지했다. 매달 3만원씩 나가는 전화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아들(35)이 말렸지만 박씨는 “어차피 외출도 안 하는데 휴대전화가 무슨 소용이냐. 집으로 연락하면 항상 있으니까 불편할 것 없다”며 휴대전화를 해지했다. 실제 박씨는 지난해 말부터 외출을 삼가고 있다.

“퇴직금을 포함해 1억원 정도 있는데 요즘은 이자가 한 달에 40만원도 안 나와요. 밥 해먹고 전기세 수도요금 내면 돈이 다 떨어지죠. 일단 34평짜리 집을 10평대로 옮겨 버틸 생각입니다.”

젊었을 때는 한 번도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박씨. 그는 “못 먹고 못 입고, 문화생활 못하니 내가 바로 빈곤층이지”라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의류회사 영업부장으로 있다가 3년 전 은퇴한 최모씨(59·서울 강서구 화곡동)는 최근 차를 팔았다. 당장 이번 달 생활비가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아서다.

최씨는 “‘쌀 사먹을 돈이 없어서 집 물건을 판다’는 게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나한테도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미 지난해 초 20평형대 아파트를 10평형대로 옮겼다. 최씨는 요즘 노인공공근로라도 해 볼 생각으로 구청을 기웃거리고 있다.

▽원인과 대책=전문가들은 노인 중산층의 급격한 붕괴 원인으로 △3%대로 낮아진 은행 금리 △낮아진 퇴직연령 △경기 침체로 줄어든 노인층 일자리 등을 꼽는다. 여기에다 최근 실버산업의 발전으로 부유층 노인이 즐길 수 있는 고급 시설이 늘어나면서 중산층 이하 노인들이 느끼는 심리적 박탈감도 심해졌다.

삼성경제연구소 김현진(金顯眞) 수석연구원은 “고령화 속도는 빠른 반면 사회보장제도와 노인문제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상태”라며 “민영 연금제 활성화 등 제도정비와 함께 ‘노인 중산층 붕괴는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사회적 인식을 이끌어내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한은퇴자협회 주명룡(朱明龍) 회장은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탓에 열심히 살아도 결국 불우한 노년을 보내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사회보장제도가 부족하다면 최소한 노인을 위한 일자리 마련에라도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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