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허정숙/그리운 가을 운동회

  • 입력 2003년 9월 25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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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숙
최근 필자의 모교인 전남 순천시 해룡초등학교가 ‘아름다운 학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어릴 적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다.

해룡초등학교는 우리 고향에서 가장 크고 역사가 오래된 학교다. 매년 가을이면 나와 친구들은 ‘대운동회’가 열리는 날을 기다리곤 했다. 이날만큼은 초등학생뿐 아니라 농사일로 바쁜 어른들까지 하나가 되는 자리였다.

필자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운동회를 위해 순천 5일장에 나가 시장을 봐 오시고 밤새도록 음식을 준비했다. 동네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마을은 온통 고소한 냄새로 가득했다. 학교 운동회는 우리 마을의 큰 축제였던 셈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비가 온다’는 전설 때문에 절대 비가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잠이 들곤 했다.

드디어 운동회 날, 지금은 어린이용 체육복과 실내화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어머니께서 재봉틀로 손수 만들어주신 고무줄 넣은 검은색 반바지와 덧버선을 신고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그때 시골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만발했고, 토실토실한 알밤이 곧 떨어질 듯 달려 있었다. 학교에 들어서면 우렁찬 운동가가 흘러나오고, 운동장 하늘 가득 만국기가 휘날리면 학생은 물론 마을 사람 모두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에는 가족과 이웃이 모두 모여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그때 어른들의 훈훈한 인심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후에 진행되는 동네 어른들의 달리기 시간은 운동회의 백미였다. 모든 경기가 끝나면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앞장선 가운데 마을까지 장구와 북 꽹과리를 치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돌아갔고, 마을에선 뒤풀이가 밤새도록 이어졌다.

누구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있겠지만 마을 사람 모두가 참가해 한마음이 됐던 우리네 어린시절은 남달랐다. 그러나 요즘 운동회는 어린이들이 경쟁하는 행사에 그치는 것 같아 아쉽다. 앞으로 초등학교 운동회가 온 가족이 함께 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길 기대한다.

허정숙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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