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2달러' 빈집털이범 피해자가 지폐번호 적어둬 덜미

  • 입력 2003년 8월 19일 18시 29분


2달러짜리 ‘행운’의 지폐 때문에 고급주택가 빈집만 골라 4억원대의 금품을 털어온 절도범이 검거됐다. 미화가 경찰과 피해자에게는 ‘행운’을, 절도범에게는 ‘불운’을 안겨준 셈이다.

이모씨(38)는 13일 서울성북경찰서에서 서울 성북구 성북동과 종로구 평창동 등지 고급 주택가를 턴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이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1시반경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장모씨(57·사업)의 집에 들어가 안방에 있던 금고를 부수고 귀금속, 이탈리아제 밍크코트, 미화 7000달러, 현금 500만원 등 2억7700여만원을 훔치는 등 7월과 8월 5차례에 걸쳐 이 일대에서 4억5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턴 유력한 용의자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피해 물품 가운데는 밍크코트, 진주목걸이, 롤렉스시계, 색소폰 등 고가 명품이나 귀금속 종류가 많았고 미화와 유로화 등도 있었다.

경찰은 범행 지역 주택의 사설 폐쇄회로(CC)TV에 모습이 잡힌 이씨의 카니발 승용차를 보여주며 자백을 요구했지만 이씨는 범행을 계속 부인했다.

그러나 이씨의 부인은 오래가지 못했다.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를 방문한 피해자 장씨가 이씨의 소지품 중 자신이 가지고 있던 미화 2달러짜리 지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장씨는 사업차 미국에 갔다가 미국인 사업가에게서 선물 받은 2달러짜리 지폐의 일련번호를 수첩에 기록해 두고 있었던 것.

2달러 지폐는 미국에서 1776년 처음 발행돼 1995년을 마지막으로 5, 6차례만 발행된 ‘귀한’ 소장품. 이 지폐는 행운을 몰고 온다는 속설이 있어 미 상류사회에서 선물용으로도 쓰이고 있을 정도. 특히 1965년 모나코 왕 레니에 3세와 결혼한 미국의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레니에 3세로부터 구애를 받을 당시 2달러 지폐를 가지고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씨는 “한몫 마련한 뒤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정착하려 했다”면서 행운의 달러가 자신에게는 불행을 가져다준 데 대해 체념하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반면 도둑을 맞았던 장씨는 “역시 행운의 2달러”라며 기뻐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씨는 특가법상 절도 혐의로 14일 구속됐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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