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곳 없나요” 점수따기 봉사활동

  • 입력 2003년 8월 18일 18시 37분


“고되지 않은 일이면 좋겠어요. 어휴, 양로원은 절대 안 되죠. 우리 애가 얼마나 노인을 싫어하는데요. 구청에서 쉬운 일 좀 찾아봐 주세요.”

주부 최모씨(43)는 지난주 구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친척에게 부지런히 ‘청탁 전화’를 걸었다. 중학생 아들이 “방학이 끝나기 전 봉사활동 시간을 채워야한다”고 조르자 편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 최씨 아들은 친척의 도움으로 동사무소에서 30분 동안 심부름을 하고 6시간 봉사활동을 했다는 확인서를 받아냈다.

개학을 앞두고 학부모들이 자녀의 봉사활동 점수를 위해 ‘청탁’을 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현행 제7차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봉사활동은 고입 및 대입 내신 성적에 반영된다. 중학생은 연간 18시간 이상은 8점, 15∼17시간 7점, 15시간 미만 6점이다. 고교생은 봉사활동 권장 시간이 1년에 20시간 이상이며 신입생 선발 시 봉사활동 점수를 반영하는 대학이 많다.

물론 봉사활동은 아무 때나 해도 된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학기 중엔 학원 등 사교육으로 시간을 보내고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 여름방학에 ‘봉사활동 점수 사냥’에 나선다. 학부모들은 여름방학 막바지에 편법까지 동원해 이에 일조하고 있는 것.

지난주 집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책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봉사활동을 한 채모군(14). 손이 빨라 1시간여 만에 일을 마쳤지만 손에 쥔 확인서는 8시간짜리였다.

“장애인 기관에 근무하시는 엄마 친구가 일을 구해주셨어요. 8월 초부터 엄마가 여기저기 부탁하셨대요. ‘타자가 느려서 8시간 동안 힘들게 타이핑했다’고 말했더니 8시간짜리 확인서 끊어주던데요.”

학생들은 노인의 말벗이 되거나 안마를 해야 하는 노인 시설, 장애인을 돌봐야 하는 장애인 시설 등지에서 일하길 꺼린다. 동사무소나 경찰서, 구청 등은 일도 편한데다 아는 사람만 있으면 ‘덤’으로 시간도 넉넉히 쳐주기 때문에 ‘인기 짱’이다.

채군은 “1시간 일하고 10시간씩 확인서를 끊는 친구들이 많은데 나만 몇 시간씩 고생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자원봉사리더십센터 박윤애(朴允愛) 소장은 “갑자기 급증한 자원봉사 수요를 지역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것도 문제”라며 “학교와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자원봉사 아이템을 개발하는 한편 학부모도 자녀가 진정한 봉사활동의 의미를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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