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기획 20, 40, 60代 좌담]세대갈등 넘어 통합으로

  • 입력 2003년 8월 14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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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58주년, 정부 수립 55주년이 됐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여전히 이념과 세대, 계층간 충돌 등으로 갈등을 빚었던 8·15 직후의 ‘해방공간’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아울러 올해는 정전협정 체결 50주년과 한미동맹 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본보는 광복절을 계기로 각 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이 같은 갈등을 극복하고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모색해보는 세대간 좌담을 마련했다. 13일 본사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5060세대를 대표해 한영우(韓永愚·65) 서울대 명예교수, 40대를 대표해 김호기(金晧起·43)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2030세대를 대표해 김보영(金寶映·25) 중앙대 심리학과 대학원생이 참석했다.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김호기 교수=우리 현대사는 크게 건국, 산업화, 민주화 시대로 구분된다고 본다. 이승만 정부가 건국에 주력했다면 ‘박정희 시대’라고 하는 산업화 시대가 있었고 80년대 중반 이후는 민주화가 화두였다. 60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참으로 벅찬 일들이 벌어졌다. 한 교수는 이런 사건들의 한복판에서 이념 계층 세대간 갈등을 체험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감회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한영우 교수=그동안 한국은 세계 13위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했고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김 교수가 이념 갈등, 세대간 갈등 등을 지적했는데 나는 이를 통틀어 ‘한국병’이라 이름짓고 싶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심각한 한국병을 어떻게 푸느냐가 중요하다.


▽김보영씨=한국의 20대는 그간 사회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난해 월드컵을 계기로 ‘내가 한국인이고 한민족이구나’라고 자각하게 되면서 예전보다는 한국 사회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그동안은 아무 책임 없이 현실을 비판해 왔지만 이제 우리가 30, 40대가 돼 이 사회의 주역이 됐을 때 여전히 이 ‘한국병’에 부닥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김 교수=‘한국병’이 21세기형 패러다임 정립의 걸림돌이라고 봤을 때,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정당정치, 세계화 정보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들, 비정부기구(NGO)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기적 속성이 두드러진 시민사회에서 그 속성을 찾을 수 있다.

▽한 교수=우리 세대 갈등의 뿌리는 남북분단에 있다. 세대별로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하는 시각차가 존재한다. 또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일제강점기와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특수성을 띠게 됐다. 표준적 한국인이 볼 때 보수나 진보를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딘지 결함이 있게 된 것이다. 보수층은 일제강점기에 어쩔 수 없이 협력해야 했고 또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냉전구도에 참여했다. 진보 진영 역시 너무 교조적이고 투쟁적이라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김 교수=그런 역사적 경험에 따른 세대별 시각차는 최근 한총련의 미군 훈련장 기습시위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5060세대는 이 사건을 대단히 심각하게 본다. 40대는 이보다는 덜 하지만 역시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2030세대는 이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김씨=한총련에 대해서는 20대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개인적으로 한총련의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는다. 사회에 활력과 역동성을 불어넣고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과 비판을 한다는 차원에서 그런 커뮤니티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한총련이 과연 대학생의 대표성이 있느냐는 데는 의문이다. 많은 학생들은 한총련에 대해 그 존재와 목적은 좋지만 대화와 협상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과격하고 옳지 않다고 본다.

▽한 교수=젊은이들이 이상에 불타 개혁을 하려 한 역사적 사례가 여럿 있었다. 조선 중종 때 조광조의 사림개혁과 구한말 김옥균의 개화당이 그렇다. 둘 다 깨끗하고 이상에 불타는 20, 30대가 사회개혁에 나섰다가 보수 반동에 부닥쳐 참담히 실패했다. 역사는 의도가 좋아도 방법이 졸렬하면 오히려 더 크게 후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김 교수=광복 이후 첫 세대교체는 4·19와 5·16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JP 등 쿠데타의 주역이 당시 30대였고 이후 민주화의 구심점이 된 YS와 DJ도 당시 30대라는 점에서 세대적 동질성이 있다. 작년 월드컵과 대선을 통해 비로소 60년대 이후 또 한번의 세대교체가 진행 중인 듯하다. 그 주역은 386세대다. 4·19세대와 386세대 사이에는 상이한 가치관이 존재한다. 5060세대는 긍정적 의미에서 가족주의와 권위주의를 소중히 여기고 2030세대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한 교수=우리의 세대차에는 2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나가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의 물리적 감각적 차이라면 또 하나는 문명적 차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새로운 기술이 끌고 가는 시대이고 40대가 중추가 될 수밖에 없다. 축구로 치면 기성세대는 풀백이고 2030세대가 포워드라면 40대는 링커다. 세대별 장단점을 잘 보완해 이끌고 가야 할 링커의 역할이 중요하다.

▽김 교수=40대는 한편으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이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권위주의적인 부분도 있다. 가족주의 집단주의적 성격도 많다. 2030세대와 5060세대를 연결하는 교량으로서 우리 세대에 필요한 것은 ‘통합의 상상력’이라고 생각된다.

▽김씨=20대는 굵직한 역사적 경험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외환위기와 월드컵 정도다. 경험이 축적되지 못하다 보니 역사의 주체로 뛰어들지 못하고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이념에 대한 시각도 학습된 것일 뿐이다. 정보화의 치열한 속도경쟁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한 교수=중요한 이야기다. 요즘 세대의 상황을 역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원심력은 많아졌는데 구심력이 약화돼 중심이 잡히지 않는 형태다. 개방화하고 국제화할수록 중심을 잡지 못하면 공중분해되고 만다. 삼국시대 개방화와 국제화가 가장 진전된 나라는 백제였지만 정작 통일을 이룬 것은 가장 폐쇄적인 신라였다. 백제는 구심력이 약해져 신라에 무너진 것이다. 한국이 지금 바로 그런 위기에 놓여 있다. 구심력, 즉 사회통합을 높여주는 국가정책이 긴요하다.

▽김씨=젊은 사람들이 긍정적 가치를 둘 수 있는 것과 한국적인 것의 결합이 이뤄져야 할 듯하다. 월드컵이 좋은 예다.

▽한 교수=월드컵은 우리에게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해 줬다고 본다. 한국팀을 열렬히 응원한다는 점에서 애국적이고 응원을 마친 뒤 그 자리를 깨끗이 청소할 줄 안다는 점에서 도덕적이었다. 상대팀 선수가 잘하면 박수치고 격려할 줄 알았다. 나는 그런 인간상이 바로 선비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선비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바탕으로 과격한 투쟁보다는 교화를 통한 사회 개조의 이상을 추구했다. 그런 선비상이야말로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김 교수=흥미로운 해석이다. 나는 월드컵이 준 교훈이 ‘진리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낡은 이분법에 있다. 이념 지역 계층에 따른 이분법은 19세기나 20세기의 유산이다. 월드컵에 참여한 세대는 독자적 목소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외부적으로 비친 것은 하나였다. 세대 긴장, 세대 갈등을 우려하지만 월드컵을 떠올려보면 해법과 미래지향적 치유방법이 있다.

▽김씨=월드컵같이 여러 세대가 만나는 마당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 월드컵 때는 모두가 어우러져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세대 갈등이란 것도 서로에 대한 정보 없이 멀리서만 보니까 획일적으로 보이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김 교수=결국 톨레랑스(관용)인 것 같다. 가치관과 생활방식의 차이를 해소하는 방법은 서로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세대마다 나름대로 진실과 행복이 있다는 생각, 내 것이 소중한 만큼 상대방 것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세대를 뛰어넘어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되찾아야 한다. 90년대 중반 도달했던 1만달러 국민소득을 회복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광복절을 되돌아보면서 이제 그 10년간 잃어버렸던 꿈과 희망을 되찾아야 한다.

▽한 교수=국민에게 신바람을 불어넣어 줘야 하지만 그것을 ‘2만달러 시대’식의 수치로 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김씨=과거의 것을 새롭게 가져올 때 젊은 세대도 수용이 가능할 만큼 목표가 현대적이고 구체적이었으면 좋겠다. 요즘 세대는 구체적으로 시각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김 교수=8·15가 되면 백범 김구 선생이 떠오른다. 백범은 우리 사회가 진정한 독립국가인 동시에 질 높은 문화국가가 될 것을 열망했다. 58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이를 재해석하면 ‘통합과 도약’으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 교수=어떻게 통합하고 도약할 것인가도 다 우리 역사에 있다. 아까 진리가 하나이면서 둘이라고 했는데 조선 성리학의 이기이원론 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또 환인과 환웅과 단군이 셋이며 하나라는 사상도 다 그런 철학을 깔고 있다.

정리〓서영아기자 sya@donga.com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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