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신도시 '폭주 버스' 르포

  • 입력 2003년 4월 16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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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분당과 고양시 일산에서 서울을 오가는 버스들이 과속과 난폭 운행을 일삼고 있어 승객들이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16일 오전 7시경 일산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는 1000번 광역직행버스에는 승객 50여명이 타고 있었다.

지하철 일산선 대곡역 앞의 무인단속카메라를 코앞에 두고도 시속 100㎞를 넘나들던 버스가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경찰관이 이동카메라로 속도 위반 단속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띄었기 때문.

운전사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 허리춤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뒤따라오는 동료에게 단속 사실을 알렸다.

신호를 무시하고 과속으로 달리다 14일 버스 추락사고가 났던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행신지하차도 위 도로에서 이 버스는 좌회전 신호인데도 그대로 내달렸다. 이곳에는 ‘제2의 사고’를 기다리고 있는 듯 2대의 견인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15일 오후 6시10분경 서울 영등포역을 출발한 일산행 914번 좌석버스는 신호를 8번이나 위반한 뒤 자유로와 연결되는 강변북로에 들어서서는 1차로로 달리기 시작했다.

화물차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앞서 가던 승용차 2대가 황급히 차로를 바꾸었으나 제한속도 80㎞를 넘어선 이 버스는 미처 피하지 못해 그대로 들이받자 승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빈 종이상자였다.

이 버스는 고양시 구간에서 200여m나 중앙선을 넘은 채 달리기도 했다.

승객 이모씨(42·고양시 일산구 주엽동)는 “서울행 버스들이 수년째 과속단속카메라도 무시한 채 달리고 있다”며 “대체수단이 없어 버스를 이용하지만 늘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말했다.

분당에서 서울로 오가는 버스도 사정은 마찬가지.

16일 오전 7시반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든 분당발 서울행 45-2번 버스는 60여명의 승객을 태운 채 100㎞를 넘나드는 속도로 달렸다.

버스가 급정거할 때마다 승객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서울 광화문을 출발해 15일 오후 8시반 분당에 진입한 같은 노선의 다른 버스는 시내에서도 고속도로인양 경적을 울리며 질주했다.

20대 여성이 내리려고 벨을 눌렀지만 과속으로 달리던 이 버스는 정류장을 한참 지나친 뒤 세웠다.

한 여성은 다 내리기도 전에 버스가 출발하는 바람에 도로에 넘어지기도 했다.

운전사는 “간선도로(성남대로)와 달리 지선도로는 신호등이 이어지지 않아 최소 70㎞ 정도로 밟아야 빨간불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많은 승객을 태운 버스들이 안전을 무시한 채 마치 법을 비웃듯 질주하고 있지만 단속의 손길은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분당과 일산에서 서울을 오가는 버스 회사들은 대부분 서울시에 등록한 업체여서 현지 주민들의 민원이 폭주하고 있는데도 고양시나 성남시는 별다른 행정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고양시 관계자는 “버스의 난폭운행에 대한 시민들의 신고가 잇따르지만 현행법상 등록관청인 서울시에 통보할 뿐 우리는 구체적인 행정조치를 취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고양=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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