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케치]늘어나는 시내 감시카메라

  • 입력 2003년 3월 28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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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갤러리 앞. 30대 남성 운전자가 불법주차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어딘지 모르지만 스피커에서 방송이 울려나왔다.

“91XX 차량, 불법주차입니다. 차 빼주세요.”

30대 남성은 깜짝 놀랐다.

“아니, 누가 어디서….”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두리번거리는 사이 다시 한 번 방송이 나왔다.

“대체 스피커가 어디에 있는 거야.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또 한 차례 재촉 방송이 나왔고 운전자는 견디다 못해 놀란 표정으로 서둘러 차를 뺐다.

경고방송을 한 사람은 바로 길 건너편에 있었다. 종로구청 직원이 불법주차 차량을 보고 휴대전화를 통해 경고방송을 한 것이다.

이 달 20일 인사동에 독특한 ‘불법주차 감시카메라’ 3대가 설치됐다. 감시카메라와 온라인으로 연결된 종로구청의 메인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불법주차 차량이 나타나면 경고방송을 할 수 있는 첨단시스템. 감시카메라 옆에 부착된 스피커를 통해 경고방송이 나가게 된다.

현장의 단속반원이 그 자리에서 고유번호로 전화를 걸어 방송을 할 수도 있다.

서울 강남구 지하철역 주변에도 방송이 가능한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지만 전화를 이용해 방송할 수 있는 시스템은 인사동에 설치된 것이 처음이다.

예기치 못한 방송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기 일쑤다. 종로구청 교통지도과 박명현(朴明炫)씨는 “방송을 듣고 놀라서 아예 차를 놓고 도망가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서울의 골목길에까지 감시카메라가 들어서고 있다. 쓰레기 무단투기 감시카메라다. 종로구 관악구 구로구 노원구 등은 지난해 말부터 쓰레기 투기가 잦은 골목길과 공원 등에 감시카메라 60여대를 설치했다.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이후 쓰레기가 절반 이상 줄었을 정도로 효과가 크다. 그러나 감시카메라에 포착된 양심불량자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녹화테이프 속 인물의 사진을 갖고 현장을 찾아가 탐문조사를 해야 하는데 주민들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주민들이 ‘이웃을 고자질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 알려주길 꺼리기 때문이다.

감시카메라가 있는 곳은 쓰레기가 줄었지만 카메라의 눈을 피해 다른 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각 구청에선 수시로 카메라를 옮겨 설치한다. 노원구의 경우 가짜 감시카메라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감시카메라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종로구는 청계천로와 대학로에 방송 가능한 불법주차 감시카메라를 10대 더 설치할 계획이다. 구로구는 다음달 방송 가능한 쓰레기 감시카메라 4대를 골목길에 설치한다. 경고등이나 경고벨이 작동하는 쓰레기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려는 자치구도 적지 않다.

은행이나 지하철역, 백화점 등에서 주로 만났던 감시카메라. 그 종류가 어떻든 이제 골목길 대문 앞까지 밀려오는 형국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시민들의 ‘양심불량’이 자초한 것이 아닐까.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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