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케치]서울시내 나무은행

  • 입력 2003년 4월 4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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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반포2동에 위치한 서초구 나무은행. 3000여평의 땅에서 시민들이 맡기거나 기증한 나무 24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전영한기자
서울 서초구 반포2동에 위치한 서초구 나무은행. 3000여평의 땅에서 시민들이 맡기거나 기증한 나무 24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전영한기자
1998년 3월 말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주택가. 이 곳을 지나던 한 서초구청 관계자는 대문 앞에 버려진 대추나무를 보았다. 이유를 알아보니 집을 헐고 다시 짓기 위해 나무를 뽑아 내다버린 것이었다.

서초구는 곧바로 이 나무를 맡아 기르기로 하고 인근 양재동에 120평 규모의 땅을 마련했다.

그 해 식목일, 나무은행은 이렇게 태어났다.

서초구청 관계자가 전하는 당시 집주인의 소감.

“돌아가신 아버지가 20년 간 애지중지 키운 나무를 없앨 수밖에 없어 저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버님을 두 번 돌아가시게 하는 건 아닌지 해서요. 그런데 이렇게 나무를 맡아 키워준다고 하니 면목이 서는 것 같습니다.”

나무은행은 말 그대로 나무를 맡아 길러주는 곳. 도로공사나 아파트 신축공사 등의 사정 때문에 없애야 하거나 기르기 어렵게 된 나무를 맡아 키워준다.

또 나무를 기증 받아 기르다가 공원이나 새로 짓는 아파트 학교 등 필요한 곳에 주기도 한다.

보관 기간은 기본 2년에 보관료는 없다. 맡기는 사람이 운반과 이식 비용을 댄다. 기증하면 구가 이식 비용을 부담한다. 그러나 상태가 좋지 않은 나무는 받아주지 않는다. 여름이나 겨울에는 고사(枯死) 우려가 높아 이식을 하지 않는다.

3일 오후 서초구 반포2동 주공아파트 2단지 옆에 위치한 ‘서초구 나무은행’을 찾았다. 1999년 양재동에서 옮겨온 나무은행으로 서울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3000여평에 향나무 단풍나무 플라타너스 느티나무 측백나무 소나무 등 2400여그루가 빼곡이 들어차 있다.

나무 사이에서 여성 2명이 봄나물을 뜯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잎이 무성해져 마치 숲 속에 온 듯한 느낌이에요. 집 가까운 곳에 숲을 하나 거저 얻은 것 같아 너무 좋습니다.”

1998년 나무은행이 처음 생겼을 때 이름은 ‘나무고아원’이었다. 오갈 데 없는 나무를 보관한다는 의미였다. 어감이 좋지 않다는 지적에 따라 이듬해 나무은행으로 바꿨다.

그 후 서울 대부분의 자치구에 나무은행이 생겼다. 지금까지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서초구와 동작구 등 일부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맡긴 나무를 찾아가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서초구청 김양수(金良洙) 조경팀장은 “맡긴 나무를 옮겨 심는 비용보다 작은 나무를 사서 심는 비용이 더 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증 의도가 불순한 경우도 적지 않다.

동작구청 윤정하(尹貞河)씨는 “좋은 나무는 다른 데 팔고 나쁜 것만 쓰레기 버리듯 기증하려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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