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의 장애학생을 위해…” 아름다운 학교 숙명여고

  • 입력 2003년 3월 7일 19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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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 중 단 한 명뿐인 장애 학생을 위해 학교 계단을 개보수한 서울 숙명여고에서 7일 이 학교 1학년 문화진양(16)이 휠체어를 타고 웃으며 친구들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훈구기자
전교생 중 단 한 명뿐인 장애 학생을 위해 학교 계단을 개보수한 서울 숙명여고에서 7일 이 학교 1학년 문화진양(16)이 휠체어를 타고 웃으며 친구들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훈구기자
올해 숙명여고(서울 강남구 도곡동) 1학년에 진학한 문화진양(16)은 어린 시절부터 하반신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척추 안의 신경이 약해 하반신에 힘을 줄 수 없는 ‘척추근위축증’을 앓고 있다. 벽을 잡거나 옆에서 손을 잡아주면 천천히 걸을 수 있었지만, 조금씩 상태가 나빠져 요즘은 휠체어 없이는 거동하기가 어렵다.

숙명여고 재학생 1682명 가운데 화진양처럼 장애를 겪고 있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청각장애로 보청기를 끼고 있는 학생이 1명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학교측은 ‘단 1명’인 화진양을 위해 올 2월부터 시설 개·보수를 서둘렀다. 원래 3, 4층에 있던 1학년 교실을 일단 모두 1층으로 옮겼다. 1층으로 들어서는 모든 계단도 깎아 휠체어로 오를 수 있게 만들었다. 1층 화장실에 있던 장애인용 변기도 깨끗하게 단장했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장애인용 화장실은 학교측이 이미 98년에 5개나 준비해둔 것.

화진양에 대한 주위의 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친구로 지내면서 그의 도우미를 자청했던 이상아양(16)도 숙명여고에 진학한 것. 상아양은 초등학교 때는 가방을 들어주었으며 화진양의 상태가 악화되자 중학교 때부터는 화진양을 업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상아양은 “‘같이 논다’는 생각으로 함께 있기 때문에 특별히 도와준다고 의식한 적은 없다”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또 “화진이는 저보다 공부를 잘해 모르는 것도 잘 가르쳐준다”며 미소지었다. 학교측은 두 학생을 같은 반에 배정했다.

학교측은 휠체어 출입통로와 출입문 강화유리 설치 등으로 총 3700여만원이 들었으나 자체예산으로 충당했다. 한편 숙명여고에는 성공한 삶을 살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반신장애인이 된 한 동문이 96년 ‘몸이 아픈 학생을 위해 써달라’며 장학금으로 1억원을 기부한적도 있다. 학교측은 이 동문의 사연을 특별활동 시간에 널리 가르치며 ‘더불어 사는 지혜’를 교육하고 있다.

숙명여고 안명경(安明京) 교장은 “교내 수화 동아리에 있던 학생이 사회복지학과로 진학한 뒤 자원봉사자로 다시 학교를 찾아 후배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무척 뿌듯했다”며 “장애 학우와 더불어 사는 환경 속에 편견도 없어지고, 봉사활동에 대한 동기 부여도 자연스럽게 형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화진양의 어머니(41)는 “학교 배정을 받고 교감선생님께 1층에 있는 교실로 배치해 주면 좋겠다는 말은 했지만 이렇게 깊이 있게 배려할지는 몰랐다”며 학교측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나타냈다.

화진양은 “앞으로 변호사가 되어 어려운 곳에서 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제가 받은 주위의 도움을 갚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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