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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2월 23일 22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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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농협 농민단체 등이 참여한 가운데 21일 열린 회의에서 저장된 상품용 감귤 9만7000t을 ㎏당 200원에 수매하기로 결정됐으나 농민들의 시름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현지 분위기-감귤 주산지인 제주 남제주군 남원읍. 25년 동안 감귤을 재배한 양상집(梁尙集·50)씨는 저장창고에 쌓인 감귤을 쳐다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감귤가격 폭락으로 출하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썩고 있는 감귤만큼이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는 것. “감귤농사, 이제는 끝장났어요. 애쓰게 생산한 감귤을 팔아봤자 손에 들어오는 돈은 한푼도 없었요. 오히려 농약비 인건비를 대느라 빚만 늘었어요.”
1만평의 감귤과수원을 재배하는 양씨는 지난해 110t을 생산해 37t을 출하했지만 수입은 200만원정도에 불과했고 팔지 못한 나머지 감귤을 창고에서 썩히고 있는 실정.
북제주군 애월읍 봉성리 홍승화(洪承華·60)씨도 사정은 마찬가지. 74t의 감귤을 생산해 56t을 팔았지만 생산비도 건지지 못했고 나머지 18t을 저장하고 있는 상황.
홍씨는 “감귤과수원 1300평정도를 갈아엎어 채소를 재배하려고 하지만 전망이 불투명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한숨 지었다.
▼유통실태-서울 등 대도시 농산물 공판장에서 낙찰된 감귤의 평균 가격은 지난 1월 중순 ㎏당 400원대에서 이 달 중순 270원대로 폭락했다.이런 감귤 가격은 감귤의 생산원가인 ㎏당 250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농민들은 물류비 농약비 등을 갚기 위해 오히려 빚을 내야할 형편. 일부 농민은 아예 감귤 출하를 포기하고 창고 등에서 썩고 있는 감귤을 산간 도로변에 내다 버리고 있다.
1980년대 ㎏당 2907원의 높은 소득을 올려 감귤나무 10여그루면 자식 대학공부를 시킬 수 있어 ‘대학나무’로 불렸던 것은 이제 옛말이 됐다.
가격 폭락은 재배면적이 1980년 1만4094㏊에서 최고 2만5860㏊까지 늘었고 저질 감귤의 유통, 싼 외국산 과일의 유입, 소비둔화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
지금까지 유통된 감귤은 55만t가량으로 저장감귤 15만t을 합칠 경우 지난해 팔린 감귤은 70만t에 이르러 제주도가 당초 추정한 58만7000t을 훨씬 넘어선다.
▼대책-감귤가격 하락이 이어지는 가운데에도 일부 감귤 상품은 높은 가격을 받았다.
제주감협의 특화 브랜드인 ‘불로초’와 ‘귤림원’ 등은 ㎏당 1700원선에 팔려나갔고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한라봉’은 ㎏당 8000∼1만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서귀포시 효돈농협 강경언(康京彦·55) 조합장은 “당도 10브릭스(brix) 이하의 감귤은 아예 출하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한다”며“고품질 감귤 생산만이 감귤산업을 살리는 최선의 길”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올해 ㏊당 2400만원을 지원해 감귤과수원 1226㏊를 없애고 감귤나무 간벌(間伐)작업 등을 통해 감귤 적정 생산을 유도할 방침이다.
우근민(禹瑾敏) 제주지사는 “행정적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고품질 감귤생산과 감귤출하조정에 참여하는 농민들의 자구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임재영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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