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이사람

  • 입력 2003년 1월 27일 21시 00분


‘나고 죽는 길이/예 있어 두려워/나는 가노라 말 한마디 못하고 가는구나.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이에 저에 떨어질 나뭇잎처럼/한 가지에 태어났으나 가는 곳 모르겠도다. 아 미타찰(극락)에서 만날 날/도 닦으며 기다리련다.’

“월명스님이 지은 ‘제망매가’라는 향가입니다. 자신은 비록 출가한 몸이지만 죽은 누이동생을 그리는 마음이 참 숭고하지 않습니까. 이런 마음은 종교를 뛰어넘는 사람의 정 아닐까요.”

경북 예천군 용궁면 장안사 주지 지정(智正) 스님은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향가(鄕歌) 가운데 지금도 남아 있는 25수를 풀어 만든 책자 5000여권을 문경과 예천지역 고교생과 교사들에게 최근 나눠줬다.

“향가는 짧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깊습니다. 향가를 한줄 한줄 음미하다 보면 회복해야할 우리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요. 이런 게 한국인의 정서적 뿌리일 겁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중심을 잃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향가집을 만들었습니다.”

지정 스님은 ‘헌화가’ ‘처용가’ ‘찬기파랑가’ ‘서동요’ ‘제망매가’ ‘모죽지랑가’ ‘도솔가’ ‘공덕가’ 등 25수를 한글 풀이와 함께 해설을 곁들여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큰 마음이 세상을 사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향가에는 그런 마음이 잘 나타나 있어요. 청소년들이 향가를 고리타분한 옛 노래쯤으로 치부하지 말고 한 두 수라도 가슴에 새겨 음미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는 “향가는 차분하면서도 숭고하고 평화로운 노래”라며 “올해는 학교나 집에서 향가를 즐겨 읽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천=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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