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꿈★을 이룬 우리 이웃들]"나는 희망을 쐈다"

  • 입력 2002년 12월 29일 18시 14분



《새해가 되면 누구나 한 가지씩은 목표를 세운다. 월드컵, 대통령선거 등 수많은 일들이 꼬리를 물며 이어졌던 올해도 자신의 목표를 달성해내기 위해 한눈팔지 않고 내달려온 사람들이 있었다. 작지만 소중한 꿈을 이뤄낸 사람들-‘2002년 꿈★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속절없이 세월을 죽이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시렸어요. 하지만 올해는 마음이 참 푸근합니다.”

올해 단국대 사회과학부에 입학해 늦깎이 대학생이 된 정명수(鄭明壽·55·여)씨는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1년을 보냈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세월이 흐른 뒤 주부학교에서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검정시험으로 대입자격을 취득한 그는 하고 싶은 일을 늘 뒤로 미뤄야 하는 삶을 살았다는 생각에 해마다 연말이 되면 우울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제 그토록 바라던 대학생이 됐고 마음껏 공부도 할 수 있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물론 뒤늦게 시작한 공부는 생각보다 어려워 수업 시간이면 늘 긴장해야 했고 컴퓨터에 익숙지 않아 리포트를 쓰는 데도 애를 먹었다. 또 나이 때문에 하나를 외워도 금방 잊어버리기 십상이어서 평소에도 틈만 나면 도서관을 찾았고 시험 기간이면 밤을 새우다시피 했지만 그는 피로마저 기꺼이 받아들였다.

자식보다 어린 학생들이 ‘큰누나’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는 모습에 다시 20대로 돌아간 듯 젊어진 것 같다는 정씨는 “2002년은 삶의 의미를 찾은 해로 또렷이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청 앞에서 시민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외쳤던 거리응원단장 윤대일(尹大日·32)씨는 월드컵을 통해 꿈을 이룬 사람들 중 한 명. 지난 8년간 무명의 MC로 생활하던 그는 거리응원을 통해 단숨에 ‘대중응원의 마술사’로 떠올랐다.

이후 그는 전문 MC 외에 또 하나의 목표를 세우게 됐다.

월드컵 때 보여준 국민적 성원을 축구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로 확대시키자는 것. 올 10월 그는 뜻을 함께한 100여명과 함께 ‘태극전사 서포터스’를 출범시켰다. 또 아시아경기대회 거리응원을 준비하고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하면서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전문 MC라는 꿈에 한층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잡은 한 해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통해 제가 해야 할 또 다른 일을 발견했지요. 저에게 ‘2002’는 행운을 뜻하는 숫자가 됐습니다.”

연세대 응원단 70여년 역사에서 금기를 깨고 첫 여성응원단장에 선출된 박순옥(朴順玉·22)씨에게도 올해는 잊을 수 없는 해다. 응원단에 들기 위해 연세대를 택한 박씨에게는 1년 동안 응원단장을 하며 보낸 기간 자체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했던 소중한 꿈을 완성해간 시간들이었다.

박씨는 “여자가 무슨 응원단장을 하느냐”는 편견 속에서 출발했지만 5월에 있었던 축제와 연고전을 치르면서 “여자가 더 잘한다”는 쪽으로 동료 학생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비록 올해 정기 연고전(고려대 주최)에서 연세대가 져 아쉬움은 남지만 박씨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응원이란 건 이겼을 땐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졌을 땐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교훈이다.

박씨는 “1년간의 임기가 끝나 조금 허무하지만 부담감에서 벗어나 시원섭섭하다”며 “나중에라도 2002년만 생각하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뿌듯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연 열풍이 유난히 거셌던 올해, 30여년간 피워 왔던 담배를 끊은 중소기업체 사장 김문진(金文鎭·47)씨는 스스로가 대견하기만 하다.

하루에 두 갑씩이나 담배를 피워 왔던 김씨 역시 애연가들이 그렇듯 수십 번 금연에 도전했지만 일주일도 넘기지 못한 채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에 피울 담배가 준비돼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그는 ‘골초’였다.

하지만 김씨는 올 초 독한 마음을 먹고 금연을 시작해 드디어 성공할 수 있었다.

“머리가 맑아지니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라 사업 구상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되더군요.”

이제 그는 담배를 끊으면 좋은 점을 그 자리에서 줄줄 모두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금연 전도사가 됐다.

“올해는 제 자신의 가능성을 믿게 된 한 해지요. 아이들에게 마음먹은 일은 꼭 해내는 자랑스러운 아빠가 됐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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