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美명문대 합격생이 말하는 에세이 쓰는 법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7시 12분


올해 미국 대학에 특차로 합격한 대원외고 학생들. 앞줄 왼쪽부터 방유경(시카고대) 임수린(다트머스대) 심정아(뉴욕대) 김지완양(하버드대). 뒷줄 왼쪽부터 유영호(프린스턴대) 박정원(노스웨스턴대) 허철범(펜실베이니아대) 이준행(하버드대) 이준호군(조지타운대). 신석교기자
올해 미국 대학에 특차로 합격한 대원외고 학생들. 앞줄 왼쪽부터 방유경(시카고대) 임수린(다트머스대) 심정아(뉴욕대) 김지완양(하버드대). 뒷줄 왼쪽부터 유영호(프린스턴대) 박정원(노스웨스턴대) 허철범(펜실베이니아대) 이준행(하버드대) 이준호군(조지타운대). 신석교기자
‘에세이가 가장 어려웠어요.’

미국의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에세이 쓰기는 고역이다. 국내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도 에세이에 해당되는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남이 쓴 자기소개서’가 논란이 되기도 한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에세이는 원서 가운데 유일하게 지원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서류다. 에세이는 성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원자의 됨됨이나 가치관이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과 맞아 떨어지는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된다. 미국 대학의 경우 A4용지 1쪽 분량 정도의 에세이를 요구한다. 대학에 따라서는 에세이를 3편 이상 써야 하는 곳도 있다.

서울 대원외국어고 해외유학 준비반(SAP) 학생들은 2학년 때부터 에세이에 대비해 주 1시간씩 글쓰기 수업을 받는다. 실전용 에세이를 쓴 다음에는 친구들과 돌려보며 “글쓴이를 잘 드러내는 것 같으냐”고 따져보고 교사에게 문법 교정을 받는다.

SAP의 고교 3학년 36명 가운데 11명은 내년 3, 4월에 있을 정시 모집을 앞두고 최근 미국 대학으로부터 특차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에 2명이 합격했고 예일 프린스턴 컬럼비아 펜실베이니아 다트머스 시카고 노스웨스턴 조지타운 뉴욕대 등에 1명씩 합격했다. 이들에게 에세이 쓰는 법을 물었다.

●다양한 에세이 주제들

지원자의 면모를 파악하기 위해 대학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자기 소개를 해보라는 것이다. 아이비리그의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대는 올해도 에세이 주제 중 하나로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에세이를 쓰시오’라는 주문을 했다.

수험생 자신에게 막대한 영향을 준 인물이나 경험에 대해 쓰는 문제도 여러 대학에서 단골로 출제하는 주제다. 다트머스대는 ‘자신에게 의미있는 경험이나 성취, 감수했던 위험들, 윤리적인 딜레마에 대해 평가하라’고 했고 뉴욕대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나 이상을 쓰고 이에 반해 행동해야 했던 상황에 대해 기술하라’고 주문했다. 프린스턴대는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을 1년 준다면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펜실베이니아대의 자서전 쓰기는 유명하다. 이 대학은 올해도 ‘300쪽짜리 자서전을 썼다고 가정하고 그 중 217쪽을 써라’는 문제를 냈다.

시카고대는 까다로운 에세이 주제를 제시하는 대학으로 악명 높다. 올해는 ‘참신한 문제를 출제한 뒤 그에 대한 답을 써라’ ‘수요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실재하는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으니 자신에게도, 이를 듣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이야기를 써보라’ 등 다섯 문제를 출제하고 이 중 하나를 택해 답하게 했다.

노스웨스턴대도 이색적인 문제를 제시해 수험생들을 난처하게 한다. 올해 출제된 문제는 다음과 같다. ‘학생 세대의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그 사람의 주장에 동의하는가, 동의한다면 왜 그런가’ ‘위대한 지도자는 시대적 상황의 산물이라는 주장이 있다. 위대한 지도자는 스스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시대적 상황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나. 특정 지도자를 들어 설명하라’ ‘바보같은(stupid) 실수와 현명한(clever) 실수에는 차이가 있다. 자신이 저질렀던 현명한 실수의 예를 들고 그 실수로 인해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얻었던 이득에 대해 기술하라….’

●이렇게 써서 합격했다

학생들은 에세이 쓰는 요령으로 무엇보다 자신을 진솔하게 드러낼 것을 조언한다.

하버드대에 합격한 김지완양은 “논술과는 달리 에세이란 개인적인 내용을 쓰는 것이며 특정한 경험으로 내가 얼마나 성숙했는가를 보여주면 된다”고 말했다.

김양은 민첩하지 못한 자신의 성격에 대해 썼다.

‘부지런하고 민첩한 엄마는 나의 느릿함을 참지 못하신다. 엄마는 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행동이 굼떴다고 불평하셨다. 출산 예정일보다 3주나 늦게 태어났다면서.… 하지만 한국화와 사물놀이에서 ‘여백의 미’를 발견한 뒤로는 내 단점을 장점으로 보게 됐다. 여백이란 빈 공간을 말하는데 이것이 없으면 작품 전체가 아름다움을 잃게 된다.… 나는 느리게 살기를 선택했다. 느리지만 확고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프린스턴대에 합격한 유영호군은 “남과 대화하듯 쓰는 것이 좋다”며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이 배어나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류군은 특히 단골 기출문제인 ‘살아오면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일’에 대해 쓰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이러이러한 경험을 통해 이러한 능력을 길렀다’는 진부한 구성이 되기 쉽다는 것.

유군은 태권도에 대해 쓰면서 ‘태권도를 배우면서 몸도 마음도 튼튼해지고 협동심도 배웠다’는 진부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요지의 에세이를 썼다.

‘고교 진학 후 태권도부에 들어갔는데 너무 못해서 여학생들과 연습하게 됐다. 자존심이 상해 이를 악물고 연습했더니 태권도도 좋아지고 여러 사람들과 친해졌다.’

수많은 에세이를 읽어내는 입시 담당자의 눈에 들려면 튀는 것이 좋다. 하버드대에 합격한 이준행군은 “본질을 놓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튀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군은 3편의 에세이를 썼는데 이 중 한 편에서는 제사를 소재로 자신의 성장 과정을 이야기했다. 즉, 제사를 고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이를 버거워하는 부모 세대의 갈등을 겪으며 할아버지 세대의 보수주의와 부모 세대의 자유주의의 장점을 고루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우게 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에세이에서는 인간과 우주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천체물리학과 종교 이야기를 교차해가며 풀어쓴 뒤 대학에서 철학과 물리학을 배우고 싶다고 썼고 마지막 한 편은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이야기를 빌려 써내려갔다.

노스웨스턴대에 합격한 박정원군은 ‘학생이 유명 인사의 자제라고 가정했을 때 학생의 부모는 누구이며 그들은 학생에게 어떤 자질을 물려주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의 아버지는 마하트마 간디이고 어머니는 가수 마돈나다. 아버지는 내게 힘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을 가르쳐 주셨다. 어머니는 열정적인 힘에 대해 가르쳐 주셨는데 이는 나의 음악적 재능의 근간이 됐다. 두 분의 관심사와 철학은 매우 다르지만 이는 모두 내가 전인적인 인격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됐다….’

●좋은 에세이는 경험에서 나온다

에세이는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관건이다. 좋은 문장(어떻게)은 글쓰기 연습을 통해 연마할 수 있지만 좋은 글감(무엇을)은 경험에서 나온다. 이 때문에 미국 대학 진학을 목표로 둔 학생들은 자신이 전공할 분야와 관계된 특별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할 계획인 박정원군은 고교 2학년때부터 2년간 참여연대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올 여름 재정경제부가 후원한 청소년 모의 투자대회에 참가해 투자 전략 보고서를 썼다.

박군은 “미국의 대학에서는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학생보다는 사회 참여적인 학생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맞춰 특별활동을 하고 에세이도 그 경험을 소재로 썼다”고 했다.

뉴욕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할 예정인 심정아양은 올 1월부터 7월까지 주말마다 8시간씩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인턴으로 활동한 경험을 에세이에 썼다. 외국 여행객들을 맞아 유창한 영어와 스페인어 실력을 뽐내기를 기대했으나 처음에는 파리 날리는 객실에서 화장실 청소만 했다는 이야기다.

인문 사회 분야에 관심이 있는 방유경양은 중3 때부터 4년간 여름방학 때 인도와 러시아로 10일간의 단기 선교를 다니면서 겪었던 일을 떠올리며 시카고대 입학용 에세이에 이렇게 썼다.

‘죽어가던 할머니를 편안하게 해주려 애썼지만 그 할머니가 관심을 가진 건 내가 가지고 있던 싸구려 볼펜 한 자루였다….’

조지타운대 월시스쿨에서 정치외교를 전공할 계획인 이준호군도 한나라당 당사와 주한 아르헨티나 대사관에서 인턴을 하며 겪었던 일들을 소재로 에세이를 썼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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