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反美 경계론]한나라"정부가 방치" 민주"동조는 못해"

  • 입력 2002년 12월 9일 23시 39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사건 이후 밀어닥치고 있는 ‘반미(反美) 격랑’으로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정치권의 속앓이가 점점 깊어가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급기야 “미국에서 주한미군 철수론이 제기된다면…”하는 우려를 하기 시작했다. 정치권은 한때 반미감정이 대선에 미칠 파장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적극적으로 편승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반미감정의 기세가 꺾이지 않자 부담을 느끼고 한발 빼는 모습이다.

▽정부가 보는 미국 쪽 기류〓한국의 시위 사태와 관련해 미국 조야에서는 “한국의 시위사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같은 반응의 근거는 △이미 사망 여중생에 대해 사과와 보상을 약속했고 △미국 사법제도상 공무 수행중 과실사고는 처벌하지 않도록 돼 있으며 △해외 주둔군의 공무수행 중 사건사고는 재판권을 본국이 행사하는 게 국제적 관례라는 것이다.

실제 미국 내 일각에서는 “한국인을 위해 피를 흘린 미군에 대해 이럴 수 있느냐”며 “그렇게 한국 사람들이 원한다면 미군 철수를 검토해야 한다”는 강경론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주한미군 철수 등의 극단적 주장은 아직은 개인적이고 감정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계속 악화하면 그런 논의가 공론화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우리 정부 관계자들의 우려다.

그러나 반미 분위기를 진정시킬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이 없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9일 “광화문 촛불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됐고 다수 대중이 추모와 재발 방지에 많은 마음을 두고 있었다”고 ‘자위’했지만 ‘반미의 끝’이 어디일지 마음을 놓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분위기〓한나라당은 정부가 ‘반미 기류’를 방치하고 있다고 정부의 무대응을 비난했다. 김문수(金文洙) 기획위원장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들썩이는데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며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반미감정을 즐기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반미 분위기 확산이 노무현(盧武鉉) 후보 지지층을 결속시키는 효과를 낼지도 모른다는 시각이 배어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일각에선 “젊은 유권자의 정서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선거 후 한미관계를 고려할 때 분위기에 휩쓸려선 안된다”는 지적도 흘러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시위에 대해 “친미 반미 문제가 아니라 주권국가로서 국민적 자존심을 회복하자는 당연한 운동”이라고 일단 이해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노 후보도 이날 ‘범국민 대책위’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이 변화된 한미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옛날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이 사건을 매우 가볍게 처리함으로써 국민적 분노가 여기까지 왔다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미시위’에는 동조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노 후보가 이날 범대위의 촛불시위 참여 요구를 거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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