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경주엔 동학예술제가 있다

  • 입력 2002년 11월 20일 17시 48분


지난 11월 초 경주에서는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제1회 동학예술제다.

갑자기 밀어닥친 한파는 동학예술제를 준비한 김호연 교수를 비롯한 분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그들은 이루 필설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고초를 무진 겪으며 행사를 준비했다. 변변한 주위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오직 동학(東學)을 창시하고 이를 발전시켰으며, 동학혁명의 과정에서 구천의 원혼으로 사라진 사람들의 애끓는 마음을 달래주려는 일념으로동국대 미술학부 학생들이 김호연 교수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행사를 일궈냈다.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은 서세동점의 현실을 목도하며, 고뇌하는 지식인으로서 그 시대의 짐을 짊어졌다. 세도정치의 발호로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천주교와 서양문물이 밀려오며 전통사회는 빠른 붕괴와 해체의 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는 온 몸을 던져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고 싶었다. 구도의 긴 사색을 거쳐 나온 동학은 그같은 의지의 소산이었다.

실로 동학은 우리 5천년 역사를 통해, 외부적 도전에 대하여 우리 민족 전체의 역량을 결집하여 이에 맞서고자 한 최초의 시도였다. 동학이 포섭한 유불선은 바로 그 당시 우리 민족이 갖고 있었던 전체적 정신세계를 이름에 다름 아니다.

최제우 선생이 민족적 창의력을 터뜨려 동학을 창시하고, 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 선생이 그 뒤를 계승하여 교세를 확장하는 사이 동학은 아주 짧은 시간에 민족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았다. 마른 들판에 불을 지핀 듯한 기세로 퍼져나갔다. 동학은 새로운 사회의 탄생을 바라던 민중에게 혁명을 위한 기본이념으로 등장했다. 부패한 정권과 무자비한 외세를 응징하기 위한 혁명이었다. 그 혁명은 실패로 끝났으나, 혁명의 정신은 유유히 우리 역사의 중심부를 흘러가고 있다. 의병운동, 독립군운동, 4.19 의거, 6월 항쟁, 이 모든 것은 동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주는 동학의 발상지다. 그럼에도 경주는 동학을 잊어왔다. 동학을 논함에 있어서 경주는 결코 빠질 수 없는 요소임에도 경주가 빠진 공백의 역사가 반복되었다.

어렵게 출범한 동학예술제가 앞으로 매년 열린다. 이 예술제가 경주의 국지적 문화행사로 그쳐서는 아니 된다. 동학이 우리 민족사에서 이룩해온 역할에 맞게 동학예술제는 전국적인 규모의 행사로 하루 빨리 커가야 한다. 경주에 가면 동학예술제가 있다는 말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다음 해부터 우리 지역민들의 보다 깊은 관심과 참여, 협력이 절실하다.

신평(申平·변호사)<대구가톨릭대학교수겸 경주에서 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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