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 호적세탁 수법]"고아 출신" 속여 한양金씨 등 창설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8시 08분



검찰에 적발된 조선족 불법 체류자들의 호적세탁 과정은 우리나라의 호적 관리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호적세탁’이 가능한 것은 호적 등재 신청자에 대한 신원 조회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검찰은 밝혔다.

▽호적세탁 배경 및 수법〓조선족 등이 불법 입국하는 데 1200만∼1300만원, 호적세탁에 1000만∼2000만원이 든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불법 입국에 들어간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한국 국적을 얻으면 불법체류 단속을 피해 안정적으로 돈벌이를 하면서 제3국으로 나갈 수도 있기 때문에 1000만∼2000만원의 호적세탁 비용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적세탁에는 다양한 수법이 동원됐다. 불법 체류자들은 브로커를 통해 자신들을 호적에 올려줄 사람을 구한 뒤 ‘어렸을 때 헤어졌다가 최근에 극적으로 상봉했다’는 내용의 허위 출생신고서를 구청에 제출했다. 브로커들은 주로 가난한 사람이나 이혼 등으로 호적상 가족 관계가 복잡한 사람들에게 접근, 돈을 주고 호적을 빌렸다.

고아로 자라 출생신고가 누락됐다며 법원에 취적 허가를 신청하는 방법도 사용됐다. 장경수씨(40·구속) 등 조선족 6명은 이런 수법으로 법원에서 일가(一家) 창설 허가 결정을 받아 낸 뒤 연안 천(天)씨, 한양 이(李)씨, 한양 김(金)씨 등 6개 일가를 만들었다가 이번에 적발됐다.

1949년 이전에 국내에서 태어난 해외동포와 배우자, 미혼 자녀에게 국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한 규정도 호적세탁에 악용됐다. 브로커들은 1949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 가운데 생사를 알 수 없는 무연고 호적을 찾아낸 뒤 불법 체류자들의 중국 호구부(戶口簿·우리나라의 호적에 해당)와 혼인관계 증명서를 그 인적 사항과 똑같이 위조해 국적회복 신청을 냈다.

▽문제점 및 대책〓호적세탁을 통한 국적 취득은 동사무소의 관련 규정 준수 미비와 경찰의 허술한 신원 확인 등 허점을 이용해 이루어졌다.

검찰에 따르면 동사무소 주민등록 담당 공무원들이 ‘17세 이상 성인이 첫 주민등록을 하는 경우 경찰에 신원조회를 의뢰해야 한다’는 관련 규정을 모르고 있어 호적세탁을 초기단계에서 막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또 주민등록 최초 발급 및 일가 창설, 국적회복 과정에서 경찰이 해당자나 해당자의 아버지를 직접 접촉해 출생사실과 성장과정 등을 조사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

검찰은 우선 경찰이 호적 등재 신청자를 직접 인터뷰해 신원조회를 하도록 하고, 동사무소 직원 등 관련 공무원들이 관련 업무 지침을 지키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하는 등 호적 관련 심사 및 감독을 강화하도록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불법 비자 발급 방지를 위해 해외 공관의 비자 발급 절차를 전산화하고 범정부적인 출입국 관련 종합대책반을 신설하도록 관계 부처 등에 건의했다.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흑사회’란▼

검찰은 중국 본토의 거대 폭력조직인 ‘흑사회(黑社會)’ 조직원들이 불법 비자를 발급받아 국내로 잠입, 활동중이라고 밝혔다.

흑사회는 ‘어둠의 자식들’이란 뜻으로 중국 본토의 폭력조직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주로 총기, 마약밀수, 인신매매, 문화재 도굴 및 밀반출, 밀입국 알선 등의 범행을 저지르고 있으며 중국에서 수백억원대의 자금을 확보한 경우도 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현재 중국 본토에는 지역과 민족별로 수백개의 흑사회 조직이 활동중이다. 조선족 흑사회의 경우 조선족자치주 등 조선족 밀집지역의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헤이룽장(黑龍江)성 등 동북 3성에 10여개, 베이징(北京)에 5, 6개가 활동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국내에도 룽징(龍井) 출신 뱀파, 옌볜(延邊) 출신 호박파, 헤이룽장성 출신 흑룡강파, 상하이(上海) 출신 상해파 등 4개 분파가 조선족 집단거주지역인 서울 구로구와 경기 안산시 일대에서 활동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불법도박장 개설, 공사현장의 이권개입, 청부폭력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며 특히 잔인한 폭행을 통해 세력 다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국내 활동은 올 4월 서울경찰청 조폭수사대가 중국 룽징 출신 뱀파의 부두목 오영철씨(38) 등 3명을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검거하면서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오씨 등은 3월27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S맥주집 앞에서 김모씨(32)와 김씨의 일행인 또 다른 김모씨(33) 등 조선족 동포 2명을 흉기로 찌르고 집단폭행했다.

당시 오씨 등은 김씨를 폭행하는 것을 말렸다는 또 다른 김씨의 왼쪽 눈을 깨진 유리병으로 찔러 실명케 하는 등 극도로 잔인한 폭행을 자행했다.

검경은 국내에서 활동중인 흑사회 조직원들이 범행을 저지르더라도 이들이 신분을 숨긴 채 거주지를 수시로 옮겨 수사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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