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학교의 동화같은 가을 학예회

  • 입력 2002년 10월 31일 16시 48분


앞으로는 섬진강, 뒤로는 회문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작은 산골. 전북 임실군 덕치면 덕치초등학교(교장 최병균)에서 가을 학예회가 열렸다.

31일 오전 이 학교의 교실 두 칸 크기의 강당. 전교생이 34명으로 썰렁했던 학교 분위기가 가을걷이를 끝낸 학부모들과 동네어른, 어린 동생 등 100여명이 모여들면서 흥이 나기 시작했다.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직접 쓰고 그린 ‘시화전’과 서예작품전이 열렸고 교장 선생님이 여름내 기른 국화 화분들이 전시장을 장식했다.

부근에 학원이나 PC방 하나 없는 ‘오지의 학교’지만 이날 학예회 내용은 알차고 다양했다.

학생들이 쓴 동시와 일기 편지 낭송, 무용, 촌극, 동화구연, 영어연극, 합창, 합기도시범, 마술, 단소 합주, 부채춤, 사물놀이 등 34개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학생들은 3, 4가지씩 ‘겹치기 출연’을 하느라 옷을 갈아입으며 진땀을 흘렸다.

“소는 똥이 진짜 크다. 어떤 사람은 소똥을 밟아 넘어지네. 소똥의 냄새는 너무나 지독해서 우리는 쓰러지네” 2학년 주인(9)이가 자작시인 ‘소똥’을 낭송하자 좌중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주인이의 담임 선생님은 ‘섬진강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용택(金龍澤·55) 시인. 42년 전 이 학교를 졸업한 김 시인은 20년 넘게 모교를 지키며 제자의 아들딸들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이 학교 학생의 절반쯤은 그가 초임시절인 70년대 초 이 학교에서 가르쳤던 제자의 자녀들.

아이들의 글을 묶은 ‘학교야 공차자’ ‘달팽이는 지가 집이다’ 등 4권의 동시집을 펴내기도 한 그는 이번에도 ‘소는 똥이 진짜 크다’(신아출판사)라는 글 모음집을 냈다.

3학년 문영이와 친구들은 ‘지역 뉴스’코너에서 방송기자 흉내를 내며 지난번 수해로 끊어진 학교 근처 다리 앞에서 현장리포터를 했다.

5학년 현영이가 지난 여름방학 때 있었던 일을 유창한 영어로 소개하자 학부모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어 합창 순서. 면장과 우체국장, 파출소장, 예비군중대장, 조합장, 보건지소장에 예순이 다 된 교장 선생님까지 8명으로 구성된 ‘마을유지(?) 합창단’이 과수원길 등 동요 2곡을 어린아이 같은 율동으로 불러대자 또한번 웃음바다.

임실군 농악경연대회에서 1등을 한 4∼6학년생들의 사물놀이 공연이 피날레. 참석했던 학생과 동네사람 모두가 어깨를 들썩이고 발을 구르며 ‘마을 축제’의 대미를 장식했다. 섬진강의 물빛처럼 맑고 유쾌한 산골학교의 가을 학예회였다.

임실〓김광오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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