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예산실은 숫자와 전쟁중”…내년 예산짜기 100일작전

  • 입력 2002년 8월 1일 18시 26분


기획예산처 예산실 직원들에게 ‘여름휴가’는 없다.

예산처는 매년 5월말 정부 각 부처의 예산요구안을 받아 6월초부터 ‘예산짜기 100일 작전’에 돌입한다. 10월2일까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해야 하지만 마무리 작업기간을 빼고 실제 예산 편성이 이뤄지는 기간은 9월10일경까지 100일 남짓.

이 기간에 ‘예산맨’들은 불필요한 지출을 한 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씨름한다.

▽따내려는 쪽과 깎으려는 쪽〓정부는 내년 예산을 올해(112조원)보다 7% 증가한 120조원 이내에서 편성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54개 중앙 관서가 요구한 내년 예산 규모는 140조5000억원. 20조원 이상을 삭감하는 악역을 예산실이 맡아야 한다.

예산을 따내려는 각 부처의 기획예산담당관들도 필사적이다. 이들은 100일 작전 기간 동안 아예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기획예산처 청사로 출근하면서 예산요구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실랑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때로는 학연 지연 혈연까지 동원해 예산실 담당자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정해방(丁海昉) 예산총괄심의관은 “각 부처는 깎일 때 깎이더라도 일단 예산을 많이 확보하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비합리적인 요구를 찾아내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예산 업무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틀에 한 번 퇴근하는 사람들〓요즘 예산실 직원들의 평균 퇴근시간은 오전 1∼2시. 토요일은 평일처럼 근무하고 일요일도 오전만 쉰다. 술을 마시거나 친구를 만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다. 공무원의 시간외 근무수당 상한선인 한 달 75시간을 모든 직원이 훌쩍 넘겨 경제적인 추가 보상도 없다.

유덕상(柳德相) 경제예산심의관은 “예산실에 오래 근무한 ‘예산맨’ 중에는 5∼6년간 한 번도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가지 못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결혼한 산업정보예산과의 한 사무관은 선배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하다가 “함 팔러 잠깐 다녀오겠다”고 말했을 정도. 이날 선배 직원들은 예정에 없던 ‘함진아비’를 자청해 함을 팔았다.

예산실의 핵심 보직을 맡은 과장들은 100일 작전 중 심한 가정불화를 겪기도 한다. 무더위와 상사의 호된 지적으로 쌓이는 스트레스와 체력 저하를 이겨내기 위해 보약을 먹는 것은 기본이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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