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민간기업 무상임대 땅 강제수용 시도

  • 입력 2002년 4월 11일 18시 19분


서울시가 민간기업으로부터 무상 임대한 노숙자 보호시설을 임대계약이 만료된 이후에도 2년 가까이 사용료를 전혀 내지 않은 채 무단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11일 밝혀졌다.

시는 특히 최근 이 시설 부지가 매각되자 이 곳을 주거 및 상업시설을 지을 수 없는 ‘사회복지시설’로 용도 변경해 부지를 수용하는 방안을 추진해 시대착오적인 행정기관의 횡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임대계약 내용〓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는 1999년 1월 섬유업체인 ㈜방림과 이 회사가 유휴시설로 소유 중이던 영등포구 문래동 3가 45 기숙사 건물 3동과 부지 6682㎡(2000여평)를 2000년 6월말까지 한시적으로 무상 제공받는 임대계약을 했다.

시는 당시 급증하던 노숙자 대책의 하나로 이 곳에 노숙자 1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자유의 집’을 조성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고건(高建) 서울시장과 이승오(李承五) 당시 방림의 대표이사가 99년 1월19일 서명 날인한 계약서에는 △임대차 계약은 99년 1월1일∼2000년 6월 30일로 하고 △기간 만료와 동시에 계약은 종료되며 연장하지 않고 △계약 만료 전이라도 방림측이 계약해지를 요청하면 시는 1개월 이내에 응한다는 등의 내용이 수록돼 있다.

▽이전 요청 묵살 및 용도변경 추진〓그러나 시는 계약 만료 이후 방림측이 수 차례 반환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시설 이전을 미뤄오며 한 푼의 임대료도 내지 않고 있다. 방림측은 99년 11월15일 자금난을 이유로 ‘자유의 집 임대차계약 해지’를 요청한 것을 비롯해 99년 11월29일, 2001년 2월21일, 2002년 3월2일과 3월19일 등 5차례에 걸쳐 공문을 보내 노숙자시설 이전 및 건물 부지 반환을 요구했다.

시는 특히 방림측이 지난달 5일 해당 부지를 건설업체인 ㈜집과 사람들에 95억원에 매각하고 시설 이전을 강력히 요청하자 뒤늦게 이 부지를 사회복지시설로 용도 변경하는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시는 지난달 30일 이 부지를 사회복지시설로 용도를 제한하는 도시계획안을 뒤늦게 수립해 13일까지 일정으로 공람공고를 진행중이다.

당초 이 부지는 ‘영등포 부도심권 지구단위계획’에 의해 아파트 등 주택 신축이 가능한 준공업지역 용도로 도시계획이 설정돼 있었고 실제 주변의 다른 땅들은 이미 건설회사에 팔려 아파트가 들어섰다.

시는 17일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사회복지시설로 용도 변경되는 건이 승인되면 집과 사람들측과 협의해 해당 부지를 사들일 방침이다.

사회복지시설로 결정되면 아파트나 상가 등 상업 목적의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돼 민간기업에는 사실상 쓸모없는 땅이 되고 만다.

▽당사자 주장 및 해명〓집과 사람들측은 최근 서울시를 상대로 “불법 점유한 건물을 돌려주고, 불법 점유로 인해 발생한 임대료(매달 3000만원씩 총6억원) 손해도 배상하라”며 건물명도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방림측은 “당초 노숙자 문제 해결이라는 공익을 위해 시의 정책에 협조했으나 돌아온 것은 무단 점유로 인한 사유재산 침해밖에 없었다”며 “시설 반환 약속을 어긴 시가 사과하고 노숙자 숙소 이전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림측은 또 “서울시는 문제의 부지가 팔린 사실을 통보받고서야 처음으로 매입 의사를 밝혔으나 구체적인 금액조차 제시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시는 현재 이 시설에 700여명의 노숙자가 수용돼 있는데다 당장 다른 곳에 노숙자 시설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또 “계약기간 만료 후 방림측에 부지 매입 의사를 수 차례 밝혔으나 거절당했던 만큼 무단으로 점유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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