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代 김문경씨 본사에 소년소녀가장 위해 3억기탁

  • 입력 2002년 3월 8일 14시 48분


“나와 똑같은 인생의 과정을 밟고 있을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어요.”

어려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자수성가한 80대 할아버지가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데 써달라며 7일 동아일보사에 3억원을 보내왔다.

1950년대 초 서울 중구 남대문로 2가에 귀금속가게 ‘정금사’를 세워 60, 70년대 명성을 떨쳤던 김문경(金文經·86)옹.

막내며느리 이선희(李善姬·47)씨와 함께 성금을 내기 위해 이날 동아일보사를 찾은 김옹은 한사코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다 가까스로 말문을 열었다.

“어려서부터 고생하면서 앞만 보고 살아오느라 담배도 못 피워봤어요. 몇 년 전 아내(곽영주씨)가 치매에 걸리고 기력이 떨어져 가끔 즐기던 골프도 못하게 되면서 늦게나마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됐어요.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게 ‘사랑’이라는 것을….”

그는 60년대 서울 종로구 종로1가의 음식점 ‘한일관’과 더불어 개인 납세자로는 가장 고액의 세금을 낼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

당시 은행들이 업무가 끝나 문을 닫아도 정금사가 돈을 가져가면 문을 열고 돈을 받아줬다는 것. 정금사는 10여년 전 중구 소공동으로 장소를 옮겼다가 3, 4년 전에 없어졌다.

경기 수원에서 태어난 김옹은 3세 때 열병으로 어머니가 숨지고 6세 때 인천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던 아버지가 파선으로 세상을 뜨면서 홀로 남겨졌다.

10세 때 서울로 온 김옹은 당숙이 경영하던 발동기 판매상의 심부름꾼으로 시작해 당시 서울의 최대 명물로 꼽히던 화신백화점 양복부 점원으로 일하는 등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가리지 않고 열심히 했다.

이 때문에 돈은 벌었지만 야학으로 중등교육까지만 받아 평생 못 배운 것이 한이라고 그는 말했다.

김옹은 슬하에 아들만 7명 뒀다. 이 중 넷째인 김학중(金學重)씨는 서울 청구성심병원 이사장이다. 3명은 캐나다로 이민갔고 나머지는 각자 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성금을 동아일보에 기탁하게 된 데 대해 “칭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을 꾸짖고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언론의 진정한 역할”이라며 “동아일보가 그런 역할을 잘해온 것 같아 망설임 없이 찾게 됐다”고 말했다.

김옹은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성공했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실패한 적이 훨씬 더 많았다”며 “소년소녀가장들이 일순간의 좌절로 꺾이지 않았으면 하는 게 이 늙은이의 작은 부탁”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사는 각종 사회복지재단의 추천을 받아 소년소녀가장들에게 김옹의 성금을 나눠줄 계획이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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