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늘어만가는 양주 소비]‘폭탄주 입맛’ 불황 모른다

  • 입력 2001년 10월 30일 18시 41분



“잘 돼도 술이고, 안 돼도 술이죠.”

27일 오후 9시반 대학동창 3명과 함께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룸살롱을 찾은 황모씨(32)는 쓴웃음을 지으며 단숨에 폭탄주 한 잔을 들이켰다.

벤처회사에 다니는 황씨는 1년 전만 해도 혼자 술값을 다 냈지만 이날은 회사 형편이 좋지 않아 친구들과 술값을 분담했다. 하지만 마신 양주는 1년 전과 마찬가지로 2병이었다.

▼“잘 나갈때 소비 고급화”▼

룸 30여개를 가득 메운 손님들도 황씨 일행처럼 경기불황을 성토했지만 주문하는 양주의 양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술집 종업원은 말했다.

경기 불황 속에서도 양주 수입과 소비가 오히려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주류업계는 올해 국내 위스키 판매량을 지난해 260만3720상자(1상자에 9ℓ)보다 15% 가량 늘어난 299만5000여상자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류도매상과 유흥주점 관계자들은 “‘행복했던’ 시절에 익숙해진 술 소비문화와 고급화된 입맛이 ‘불행해진’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 양주 소비 증가의 한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급격히 줄었던 술 소비는 지난해 초 벤처특수와 주가상승으로 다시 폭증한 뒤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벤처 바람으로 떼돈을 번 졸부들이 발렌타인 17년짜리는 물론 30년짜리도 너무 쉽게 마시는 풍조가 생겨났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룸 50여개인 강남의 대형 룸살롱에 들어가는 양주는 한달 평균 4000여병이나 된다고 업주측은 밝혔다. 소비되는 양주도 15년 이상의 프리미엄급이 주류를 이룬다는 것.

▼‘테러주’등 신종폭탄주 등장▼

특정집단의 술 문화였던 폭탄주가 일반인들에까지 확산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폭탄주들이 생겨난 것도 양주 소비를 늘린 원인이 되고 있다.

전통술과 양주를 섞은 ‘벤처 폭탄주’에서 테러를 당한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처럼 폭탄주 2잔을 나란히 놓은 뒤 그 위에 탑처럼 또 다른 폭탄주 1잔을 올려놓는 ‘테러주’까지 등장했다.

주류회사들이 500㎖짜리 위스키를 내놓는 등 적극적인 판촉전략을 편 것도 양주 소비를 증가시킨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7월 1일 현재 룸살롱 카바레 나이트클럽 등 전국의 유흥 주점수는 5544개. 경기가 좋지 않지만 99년의 4852개, 지난해의 5506개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담 스카우트비용 2억원”▼

강남에서 룸살롱을 운영하는 한모씨(40)는 “요즘은 룸살롱들이 50개 이상의 룸을 갖는 등 대형화하면서 능력 있는 마담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2억원 이상을 쓸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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