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 솜방망이 처벌 의문]이용호씨 '로비' 세무서도 통했나

  • 입력 2001년 9월 14일 19시 49분


“계좌추적으로 상당부분 드러났다. 특별세무조사를 받으면 KEP전자는 물론 지주회사인 세종투자개발도 심각하다. 고위선을 통해 제압하는 것이 최선이다.”(이용호씨측 내부보고서)

“부가세의 가산세만 내면 되는 문제다. 1억3000만원을 정당하게 부과했다.”(서울 금천세무서)

이용호(李容湖·구속중)씨가 소유한 KEP전자의 회계장부를 둘러싼 진실은 무엇일까. 이씨측은 급박하게 로비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정작 징세당국은 ‘별것 아닌 문제’로 처리했다.

국세청의 ‘너그러운’ 시각 때문에 지앤지(G&G·전 세종투자개발) 회장 이용호씨 계열사인 KEP전자측이 “계좌추적까지 당해 다 드러나게 생겼다”며 걱정하던 회계조작 혐의가 간단히 처리되면서 이씨의 범죄는 이어져갔다.

이씨측 내부보고서가 사실이라면 국세청의 솜방망이 처리는 서울지검이 지난해 5월 이씨를 긴급체포하고도 놓아준 사실과 함께 사법과 조세라는 국가존립의 두 근간이 허술하게 지탱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특히 이용호씨측이 작성한 내부보고서나 자금인출기록 등은 이씨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내 로비능력은…”이란 말이 자기과시성 발언이 아닐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국세청의 대응〓이용호씨측 내부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 마포세무서는 99년 10월 이후 이용호씨 계열의 KEP전자가 가짜 영수증을 사들여 장부조작한 사실을 파악했다. 이용호씨가 소유한 KEP전자 이모 자금부장이 당시 작성한 ‘마포(세무서) 처리방안’에는 “KEP전자 세종투자개발(현 G&G) 등의 문제가 상당히 확대 진전됐다”며 “(마포세무서가) 계좌추적을 통해 KEP전자가 입금한 돈이 RGB시스템에서 수금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돼 있다.

그러나 마포세무서에서 자료를 넘겨받은 금천세무서는 KEP전자 자금부장이 ‘위기상황’으로 규정한 사안을 단순사건으로 처리했다. 금천세무서측은 14일 “KEP전자가 제품을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못하는 개인에게 팔면서 서류보완 차원에서 가짜 영수증을 샀을 뿐”이라고 밝혔다.

세무전문가들은 △상장기업이 △세무비리의 온상인 세금계산서 장사꾼과 거래했고 △규모가 60억원대라는 점에서 “즉각 특별세무조사해야 할 사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결국 양측간 상황인식이 180도 달랐던 것이다.

▽로비가 있었나?〓이용호씨측은 당시 로비를 적극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포 대처방안’ 보고서에는 △1안:확대를 막기 위해 고위선을 통한 제압이 최선책 △2안:마포세무서 담당 반장, 과장, 서장 라인을 직접 접촉해 해결하는 방안. 이때 가산세 및 추가자금이 필요함 △3안:최악의 경우 특별세무조사를 받는 방안이 제시돼 있다.

여기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보고서의 ‘2안’ 중 “(해결이 될 때) 가산세 및 추가자금이 필요하다”는 내용. KEP전자는 이 표현대로 가산세를 납부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어 갖가지 억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종투자개발의 자금일지는 99년 10월22일 “원만한 일처리를 위해”라고 적힌 영수증과 함께 로비자금 1000만원 인출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로비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검찰이 단서를 잡고도 수사를 외면, 아직까지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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